책이름 : 삼성을 생각한다
지은이 : 김용철
펴낸곳 : 사회평론
외딴 섬의 한적한 주말. 춘분이 지나면서 저녁 해가 꽤나 길어졌다. 식사 전 어정쩡한 자투리 시간. 무심코 TV에 눈길을 주던 나는 공익광고에 어이없는 쓴웃음을 짓는다. 지금 막 '삼성을 생각한다'를 책씻이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청탁의 유혹을 이겨내라는 소리다. 청탁을 한번 받으면 꼭두각시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 맞는 소리다. 그런데 그 유혹을 먼저 뿌리치지 못하고 독점재벌의 괴뢰로 전락한 당사자가 애매한 시청자들에게 청탁을 이겨내라고 충고를 하니 나같이 청탁한번 받아보지 못한 별볼일 없는 사람은 오히려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바로 삼성의 청탁에 목줄이 매였다. 아니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삼성왕조라고 해야 한다. 현대그룹의 경영이 계열사로 분리되면서 이 땅에서 유일하게 전근대적인 순환출자구조가 살아있는 재벌이 삼성이다.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삼성그룹 전체에서 이건희는 단 0.57%, 이건희 일가는 1.07%의 지분으로 삼성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이건희 일가의 불법, 편법, 탈법의 비리가 숨어있다. 그 대상은 이 땅의 기득권인 법조계(검찰, 경찰), 언론, 국회, 청와대 등이다. 이 땅은 삼권분립이 아니라, 삼성의 개로 모두 전락했다. 도대체 누가 국가, 사회라는 이름으로 누구를 심판한다는 것인가. 거기에 정의, 진실이 존재하는가. 돈벌레, 경제동물로 전락한 이 땅의 의식수준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자괴감마저 밀려온다. 1대 이병철, 2대 이건희, 3대 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삼성 비리의 핵심 3가지는 정·관·법조계 등에 대한 불법로비, 비자금 조성 및 탈세, 경영권 불법 승계다. 삼성임원들의 차명계좌에 입금된 비자금은 무려 10조원으로 추정된다. 이재용은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불법으로 승계받았다. 도대체 삼성이 이건희 일가의 개인재산인가. 하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를 순진하다고 오해하면 세상의 타락은 가속도가 빨라진다. 내 식대로 말하자면 모른다는 것은 불법을 용인하는 것이고, 이 사회의 부패에 일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변호사 김용철은 전두환의 비자금을 찾아냈던 검사 출신이다. 그런데 삼성 비리의 핵심참모인 구조조정본부에 배속된다. 7년간의 삼성생활은 한 인간의 양심을 타락시켰다. 하지만 그는 위대했다. 2007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찾아 양심고백을 한다. 1987년 6월항쟁은 이 땅에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시켰다. 김용철의 양심고백은 경제적 민주주의의 도화선이 될까. 아니 내 눈에는 절망적이다. 이 땅의 사회의식은 진실과 정의가 아닌 돈의 탐욕에 눈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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