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지은이 : 이시백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
이 작품집에 실린 소설은 모두 44개다. 단편소설이면 대략 소설집 4권 분량이다. 그러기에 '자유단편'이라는 덧말을 붙였을 것이다. 내게는 오히려 '꽁트'가 귀에 익은 개념이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장편소설(掌篇小說 또는 꽁트)로 단편소설과는 분량에 의해 구분된다. 단편소설은 200자 원고지 70매 내외이고, 꽁트는 4 ~ 20매 분량의 짧은 이야기 글을 말한다. 나는 이런 유형의 소설집을 두권 잡았었다. 좋아하는 환경생태작가 최성각의 '택시드라이버'와 '사막의 우물 파는 인부'다. 그러기에 파격적 형식의 낯섦에 나는 쉽게 적응했다. 책에 실린 글들은 70 ~ 80년대의 슬픈 우리 자화상에 대한 풍자와 해학이 주종을 이룬다. 유신정권의 단말마적인 발악으로 군대가 캠퍼스에 주둔하던 70년대 말과 80년대 신군부 세력의 국풍(國風)과 삼청교육대의 어두운 세월은 내게 유독 최루탄과 화염병으로 다가선다. 나는 작가 이시백을 녹색평론을 통해 처음 알았다. 격월간지 환경생태잡지 녹색평론은 매번 시 몇 편을 싣지만, 소설은 찾아볼 수 없다. 책의 부피에 부담을 주는 면도 있겠지만, 그만큼 이 땅의 환경생태 소설 분야가 척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심분야인 만큼 2009년의 녹색평론은 나에게 작은 즐거움을 주었다. 4편의 소설이 연이어 실렸는데, 첫 출발은 이시백의 '갈보콩'이었다. 그리고 정도상, 최성각, 전성태의 소설이었다. 낯선 작가 이시백은 그렇게 환경생태 소설가로 나에게 인식되었다. 새로 출간된 소설집 '누가 말을 죽였을까'를 구입하면서 작가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는데, 뜻밖에도 먼저 출간된 이 책의 추천사를 홍세화가 맡았고, 해설은 믿음이 가는 젊은 평론가 홍기돈으로서 나는 두권의 책을 함께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펴낸곳도 '삶이 보이는 창'이 아닌가. 이 신생 출판사는 '98년 안재성을 비롯한 구로지역의 활동가들이 힘을 합쳐 만든 출판사다. 즉 내 취향에 맞는 3박자가 고루 버무려진 책이다.
'인간은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하여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땅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반공' 강화의 대표적 기구는 교육기관이다. 나의 연배는 하나같이 교련에 시달린 기억을 갖고있다. 30년전의 먼 일이지만, 나의 정신적 상흔은 바로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된다. 나는 한마디로 고문관이었다. 그중 취약한 것이 고1이 되자마자 목공소에서 깍은 목총으로 단내가 나도록 찔러총을 해대던 총검술이었다. 남녀공학이었던 모교에서 나는 교련 선생에게 낙인이 찍혀 단상에 올라 고문관(?)으로서 총검술 시범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감수성 예민한 그 시절의 사춘기 소년에게, 반공으로 영혼이 마비된 그들의 비웃음은 씻지못할 정신적 외상으로 지금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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