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옛날,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 정상 신단수에 신시(神市)를 열어 인간 세상을 다스렸습니다. 그때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환웅에게 빌었습니다. 환웅은 쑥 한 자루와 마늘 20쪽을 주었습니다.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고 그것을 먹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동굴을 뛰쳐나갔습니다. 곰은 시키는 대로 참아 삼칠일 만에 여자로 변했습니다. 웅녀(熊女)는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 갖기를 빌었습니다. 환웅은 인간으로 변해 웅녀와 혼인했습니다. 웅녀가 낳은 아이가 바로 단군왕검입니다.
승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史)에 나오는 단군신화입니다. 자루에 담긴 쑥은 강화도의 해풍을 맞으며 자란 사자발쑥이라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강화도는 단군의 흔적이 실증으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마니산 정상의 참성단은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지내기 위해 마련했다고 합니다. 전등사의 삼랑성은 단군이 세 아들인 부여(夫餘)·부우(夫虞)·부소(夫蘇)을 시켜 쌓았다고 전해옵니다.
허균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은 강화도의 자생하는 쑥을 사자족애(獅子足艾)라 불렀습니다. 쑥 잎이 사자발과 닮은데서 유래하였습니다. 강화 길상에 애전(艾田) 마을이 있습니다. 말그대로 쑥밭이 있는 마을입니다. 강화도의 특산물로 부인병에 특효가 있는 사자발쑥 가공품을 손꼽습니다. 제 방에 말린 야생 사자발쑥 한 다발이 벽에 매달렸습니다. 십여년이 넘은 묵은 쑥입니다. 탈취 효과가 그만입니다.
위 이미지는 선창가는 길 모퉁이집 울타리 아래 쑥을 10월과 12월 두 달 간격으로 잡았습니다. 10월 중순의 아스콘을 밀고 올라 온 쑥과 된서리를 맞고, 폭설에 묻히고, 강추위 속에서 의연히 푸른 기운을 잃지않고 있는 12월 중순의 쑥 입니다. 쑥은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하는 풀입니다.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의 폐허에서 가장 먼저 땅거죽을 밀고 올라 온 풀이 쑥이라고 합니다. 우리 겨레의 생명력을 닮아 더욱 정이 가는 쑥입니다.
아련한 추억 속으로 사라진 애달픈 정경이 떠오릅니다. 어렸을 적 이른 봄, 들녘에 흰 수건을 쓴 아낙네와 누이들이 고픈 배를 움켜쥐며 쑥을 캤습니다. 마지막은 시인 강형철의 「쑥을 캐며」의 전문입니다.
밭두렁 옆에 /소쿠리와 같이 머리숙인 / 우리들
쑥을 캔다 / 우리들의 가난이야 / 부엌칼로 / 쑥을 캐듯이 /썸뿍 캐버릴 수 있는 것
소쿠리에 채워지는 / 하나하나의 쑥처럼 / 우리들의 마음은 출렁거린다
국을 끓일 때 / 우리들의 울음도 삶아 우리들의 환한 내일을 / 엄마에게 드리고 / 보릿대의 알진 싱싱함도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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