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진이가 만 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올 겨울은 삭풍이 맵차고 한파가 기세등등합니다. 눈까지 자주 내리고 양도 많습니다. 추운 계절을 살아가는 토진이가 어느 해보다 고달픈지도 모르겠습니다. 쉬는 날 햇살이 봉구산을 넘어와 바닷가 마을을 비추었을때 대빈창 산책에 나섰습니다. 산기슭의 헐벗은 잡목 숲 쌓인 낙엽에 귀를 등에 바짝 붙인 토진이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녀석은 여전히 마른풀로 연명하였습니다. 추위를 이겨내려면 에너지를 비축해두어야 하는데. 녀석은 운이 좋은 토끼입니다.
내처 집으로 돌아와 창고로 들어섰습니다. 어머니의 야무진 손길을 탄 스무여 남은 포기의 김장배추가 가빠아래 갈무리되었습니다. 배추는 푸른 기운을 잃지 않고 한겨울을 나고 있었습니다. 두 포기를 차에 싣고 대빈창 해변으로 달렸습니다. 지난여름 캠핑 족들의 마구잡이 밤낮 소란에 놀란 녀석의 신경이 예민해졌습니다. 녀석이 발자국 소리에 놀라 급경사를 몇 발자국 기어 올랐습니다. 배추 두 포기를 녀석의 근처에 놓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녀석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배추 곁에 머물렀던 녀석이 차 소리에 놀라 저만치 떨어져 웅크리고 자리를 잡습니다. 녀석은 배추에 입도 대지 않았습니다.
“토진이가 배추에 입도 대지 않아요.”
“먹어보지 않아서 그래. 한 잎사귀를 입에 대어주면 먹기 시작할텐데.”
어머니의 말씀이십니다. 토진이를 만난 초창기. 아까시 잎을 따 입가에 가져다주면 녀석은 오물오물 잘도 씹어 먹었습니다. 사람에 놀란 녀석은 이제 발걸음 소리만 들려도 저만치 달아납니다. 다음날 녀석은 배추 잎사귀를 맛만 보았습니다. 토끼의 먹성은 놀라울 정도인데 폭풍흡입을 기대하던 저는 실망했습니다. 수은주는 영하 10도로 곤두박질쳤습니다. 배추는 얼다 녹다를 반복하다 제 풀에 지쳐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창고에 스무 포기의 엽록소 덩어리 김장배추가 그대로입니다. 녀석이 배추에 식탐을 부렸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눈발이 날리기 시작합니다. 토진이는 나의 바람을 저버린 채 새해가 돌아왔어도 여전히 마른풀만 씹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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