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지은이 : 김영갑
펴낸곳 Human&Books
표제가 '그 섬에 내가 있었네'다. 여기서 '그 섬'은 제주도를 말한다. 그리고 '내'는 지은이인 사진작가 김영갑이다. 그런데 서술어가 과거형이다. 그럼 저자는 지금 제주도에 없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 살아 숨쉬는 저자는 현재 제주도에 없지만, 그의 영혼은 영원히 섬에 잠들었다. 출판사가 낯설다. 발행인은 문학판에서 낯이 익은 평론가 하재응이다. 2002년에 출판등록을 한 신생 출판사다. 자료를 뒤적인다. 2003년 우연히 인터넷 검색에서 한 무명작가의 홈페이지를 발견한다. '두모악'이다.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 이름이다. 물건이 될 것이라는 감에 제주도를 찾았으나, 사진작가는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을 앓으면서 갤러리 두모악을 꾸리고 있었다. 하지만 작가는 책 출간을 거절한다. 삼고초려. 마침내 사진을 트리밍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싣는다는 약속아래 책 출간 승낙을 받는다. 병이 악화되어 음식물을 제대로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하는 사진작가의 몸상태로 이 글에 실린 글들은 직접 구술을 받아 편집한 것이다. 이렇게 어렵게 책은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작가는 2005년 눈을 감았다. 화장된 유골은 그가 죽기까지 돌 하나, 나무 한그루까지 아픈 몸으로 정성을 기울여 가꾼 두모악 갤러리 - 제주 삼달리의 폐교된 초등학교를 임대 - 의 마당에 뿌려졌다. 책은 2004년에 처음 출간되었으나, 나는 양장본으로 2008년에 재출간된 2쇄 판을 구입했다. 사진작가는 '85년 제주도에 정착하여 20여년동안 한라산과 마라도, 해안가와 중산간 마을 등 제주도의 모든 풍광과 사물 그리고 사람들을 '외로움과 평화'라는 주제 표현으로 파노라마(6X17)가 제주의 자연풍광을 담는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그중 70여컷의 사진이 이 책에 실려있다. 그리고 글은 2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는 사진에 미치고 제주도에 매료되어, 섬에 정착하고 작업하는 과정과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2부는 루게릭병과의 힘겨운 투병 속에서도 평화를 잃지않고, 두모악 갤러리를 꾸미며 삶의 마무리를 짓는 과정을 쓸쓸하게 그려냈다.
서문에서 생태운동가 황대권은 이렇게 말한다. '이 시대의 희망은 도시가 짓밟아버린 농촌과 지방의 작은 도시에 있다'고. 그것은 도시로 몰려간 사람들은 어쩔 수없이 욕망의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가난하고 불편해야만 이 타락한 사회에서 작가정신은 유지될 수 있다. 상업주의에 매몰된 소위 대중작가들은 영혼을 자본에 팔아먹은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인가 시인 친구 함민복은 이렇게 현실을 개탄했다. '요즘은 시인, 소설가가 아닌 탈렌트가 너무 많다'고.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가난하고 불편하지만 영혼을 자본에 팔지는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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