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월든
지은이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옮긴이 : 강승영
펴낸곳 : 이레
책을 감싼 띠지의 문구가 인상 깊다. '19세기의 통찰, 21세기의 경전!' 그렇다. 19세기 인물의 환경생태에 대한 선구자적 통찰이 빛을 발해 21세기의 환경보호론자들에게 바이블로 떠받들어지는 책이 바로 '월든'이다. 여기서 표제 '월든'은 저자가 도끼 한자루 들고 찾아가 2년여에 걸친 숲속 생활을 기록으로 남긴 것인데, 소로우가 기거한 통나무 오두막이 호수 '월든'에 가까이 인접한데서 연유한다. 소로우는 1817년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다. 하지만 남들처럼 부와 명성을 추구하는 일반적인 삶을 팽개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적인 삶으로 일생을 마감한다. 그의 죽음도 자연(?)스럽다. 한겨울 숲속에서 나무 나이테를 세다가 독감에 걸려 폐렴으로 번져 아쉽게도 45세인 1862년에 눈을 감는다.
여기서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삶이 너무 짧아 불쌍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임종을 지켜본 주위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처럼 행복한 죽음을 본적이 없다.'고. 중요한 것은 한 인생에 있어 무게와 깊이에 있는 것이지, 무턱대고 오래 살았다고 그 삶이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암으로 고생하다, 주위사람들에게 민폐만 잔뜩 끼치다 주검을 맞는 삶은 껍데기일 뿐이다. 이런 삶은 길수록 구차할 뿐이다. 그럼 소로우는 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 소박하고 검소한 삶만이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그것은 그의 철학자적인 측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즉 그가 보는 그 시대의 철학은 철학교수만 있지, 진정한 철학자가 없었다. 쉽게 말해서 밥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말이다. 그가 말하는 철학자는 '단지 심오한 사색을 한다거나, 어떤 학파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고 그것의 가르침에 따라 소박하고 독립적인 삶, 너그럽고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이 책을 읽어가면서 내내 우리 시대의 정신적 스승이라 일컬을만한 두 분을 생각했다. 150년전 소로우는 고향을 찾아가 자연적 삶을 추구했지만, 이 땅의 두 어른은 단말마적인 발악으로 영구집권을 꾀하며 총통제를 추구하다 비명횡사한 유신정권에 항거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두 분은 서울대 미학과 출신이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70년대말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생을 하시다 고향으로 돌아와 생태주의적 삶을 견지한다. 경북 봉화의 전우익 선생님과 강원 원주의 장일순 선생님이시다. 두 분은 이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 위대한 사상은 후세들을 깨우치고, 더욱 빛을 발해 못난 나도 낙도오지의 단순소박한 삶을 추구할수 있게 그 영향은 컸다. 적적하기는커녕 내면화된 경쟁의식을 이기는 한적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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