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평행선은 록스에서 만난다
지은이 : 박철
펴낸곳 : 실천문학사
이 소설집은 표제작인 중편 '평행선은 록스에서 만난다'를 중심으로 앞뒤로 4편의 단편이 차례를 이룬 총 9편으로 구성되었다. 표제작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으나, 부모의 반대로 헤어지게 된 트기(혼혈 여성)를 호주에서 재회하여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여자는 주한미군(흑인)과 양색시를 어머니로 두었는데, 당연히 이 땅의 성장과정은 정신적 상흔의 연속이었다. 작가는 한국의 순혈주의와 호주의 백호주의에 대한 비판을 강하게 드러낸다. 나는 여기서 이 땅의 비열한 양면성을 읽었다. 그렇게 반만년 단일민족의 우수성을 떠들더니, 슬그머니 언젠가부터 대중매체는 '다민족문화'의 다양성을 예찬한다. 하긴 3D 업종에서 일하는 동남아인들의 인권사각 지대를 논하던 것이 언제였던가. 세계 무역대국 10위의 선진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은 마땅히 미개발국의 열등(?)민족에게 코리안 드림의 대상이 되었다. 당연히 그들은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업종에서 고생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는 예전 그런 고생을 하고 지금의 위치에 올라선 것이 아닌가. 목에 깁스를 한 한국인의 오만방자한 거드름은 고진감래를 겪은 자만이 그 달콤한 열매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그런데 왜 OECD 국가중 이 땅은 20대 자살율 최고를 자랑하는가. 그리고 여적 최장 노동시간이라는 멍에를 아직고 뒤집어쓰고 있는가. 그리고 자학적인 사오정, 이태백, 고소영, 강부자 등 듣보잡 신조어들이 귀를 어지럽히는가. 정말!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것인가. 애국, 민족을 부르짖는 국가주의자들의 자기도취성 발언인가. 이 책은 독자들에게 이 땅의 외진 곳을 들여다 볼 것을 권한다.
작가는 '93년부터 호주에 2년간 머물렀던 경험을 소설로 우려냈다. 그리고 시집도 한권 엮으니, '밤거리의 갑과 을'이다. 이 책 마지막에 실린 작품 '조국에 드리는 탑'이 '97년 현대문학에 실렸으니, 작가는 무려 10년 만에 소설집을 펴낸 것이다. 나는 언제인가 '김포행 막차'를 통해 작가를 시인으로 소개했으나, 오늘은 소설가로 등장시켰다. 그것은 시나 소설 모두 박철의 작품은 김포가 배경이라는데,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에는 낯익은 지명들이 등장한다. 공항동, 방화동, 공항 활주로, 김포 들판, 김포 5일장 등. 20년전 저쪽의 세월. 나는 한때 이 소설에 등장하는 김포들판인 과해동 가마니 공장의 친구에게 빌붙어 지낸적이 있었다. 제도권에 진입한 진보정당 운동이 된서리를 맞으면서 실직자가 된 나는 어려웠던 한때를 어렵게 자취하는 친구와 동거했다. 세상에 대한 울화와 분노를 깡소주로 삭이던 내가 애처로웠는지 친구는 퇴근길이면 구멍가게에 들러 주머니를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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