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산촌 여행의 황홀
지은이 : 박원식
펴낸곳 : 창해
출판사 《창해》의 책을 오랜만에 만났다. 20여 년 전, 이윤기의 손에 들기 편한 판형의 『벌핀치의 그리스 로마신화』 5권이 기억났다. 출판사 로고는 거대한 고래와 조그만 새우가 눈을 맞추었고, 문구는 ‘새우와 고래가 함께 숨 쉬는 바다’였다. 『사람과 산』 편집위원을 지낸 작가 박원식은 30여 년 가까이 자연과 문화에 대한 글을 써왔다. 산山사람의 자연에 대한 美文을 일컬어 사람들은 자연주의 에세이스트라 불렀다. 나는 그동안 도시를 탈출하여 산골에서 살아가는 예술인 28명의 이야기 『산이 좋아 山에 사네』(창해, 2009)와 충북 제천 천등산 박달재에서 30여 년을 우렁이농법으로 자급자족하는 목판화가 이철수의 대담집 『이철수의 웃는 마음』(이다미디어, 2012)을 잡았다. 군립도서관에서 메모지를 보며 대여할 책을 고르다가 우연히 책을 만났다. 품절 딱지에 막혀 잡지 못한 책을 운 좋게 출간된 지 10여년 만에 조우한 것이다. 반가웠다. 대여 목록의 다른 책은 당연히 뒤로 밀렸다. 책은 이 땅 20여 곳의 두메산골 여행기였다.
강원 - 영월군 하동면 / 영월군 수주면 / 횡성군 청일면 / 양양군 서면 / 인제군 기린면 / 정선군 임계면
충남 - 청양군 대치면
충북 - 청원군 문의면 / 괴산군 연풍면 / 보은군 회인면
경남 - 하동군 청암면 청학동
경북 - 김천시 증산면 / 포항시 장기면 / 상주시 화남면 / 영양군 수비면 / 문경시 산북면
전남 - 담양군 용면 / 곡성군 오산면
전북 - 부안군 상서면 /진안군 정천면
작가의 발길이 머무른 이 땅 20곳의 오지다. 나는 젊은 시절 알지 못할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홀로 이 땅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점차 나이가 들고 책 속의 고요와 적막에 빠져 들었다. 정선 임계는 23인의 시인들이 오지의 비경을 찾아 쓴 글을 모은 『시인의 오지기행』(문학세계사, 2012)에서 접했다. 유영금의 글「석이암산자락 너와집」을 읽고, 시집 『봄날 불지르다』를 손에 넣었다. 청원 문의는 시인 고은의 네 번째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로 귀에 익었다. 보은 회인은 『어린 당나귀 곁에서』의 좋아하는 서정시인 김사인의 고향으로 기억되었다. 곡성 태안사는 「국토」의 시인 조태일의 모태였다.
영월은 단종 유적 청렴포를 찾아 불쌍한 어린 임금의 애달픈 넋을 위로했다. 양양은 산불로 피해를 입은 낙산사의 돌담장이 안타까웠고, 의상이 관음보살을 친견했다는 홍일암을 찾았다. 청양 칠갑산의 대웅전이 두 개나 자리한 장곡사의 전각 배치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괴산의 속리산 화양구곡을 찾아 우암 송시열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영양은 우리나라 4대 별서 정원의 하나인 〈서석지〉를 답사했다. 마음이 아플때마다 나는 부안 변산반도의 채석강, 내소사, 곰소항을 찾아가 마음을 가라앉혔다. 진안 마이산 탑사의 불가사의한 돌탑과 은수사 청실배나무를 찾았다. 담양의 관방제림과 소쇄원, 명옥헌 등 조선 유림의 별서정원은 나의 마지막 답사 비장처로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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