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대빈창 2019. 11. 15. 07:00

 

 

책이름 :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지은이 : 안톤 슈낙

옮긴이 : 차경아

펴낸곳 : 문예출판사

 

나는 강화도에 한 달에 두 번 정도 발걸음을 했다. 그때마다 강화군립도서관에 들렀다. 세 권의 책을 대여하고 반납했다. 대여기간은 3주일이었다. 도서관 회원은 한 달에 세 권의 희망도서를 신청할 수 있었다. 가장 이른 시기에 신청한 책 중 한 권이었다. 새 책에서 나무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책 리뷰를 서핑하다, 너무 낯익은 문장을 만났다.

 

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초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정원 한 모퉁이에서 오색영롱한 깃털의 작은 새의 시체가 눈에 띄었을 때.

대체로 가을철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를테면 비 내리는 잿빛 밤, 소중한 사랑하는 이의 발자국 소리가 사라져갈 때, 그러고 나면 몇 주일이고 당신은 다시 홀로 있게 되리라.

 

표제작인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9쪽)의 서두다.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수필의 첫 손가락에 꼽을 만한 작품이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1953년도 고교 2년 국어교과서에 등장했다. 당시의 글은 수필가 김진섭(金晋燮, 1908 ~ ? )이 번역했다. 글이 교과서에서 사라진 해가 1982년이었다. 고교 교과서에 30여 년 동안 실린 글로, 안톤 슈낙은 이 땅에서 누구보다 사랑받은 수필가였다. 책은 1부의 어린 시절, 고향, 자연을 소재로 한 자전적인 에세이 16편과 2부의 젊음, 사랑, 방랑, 숲을 소재로 단편 형식을 취한 수필 9편 등 25편의 수필 모음집이었다.

저자 안톤 슈낙(Anton Schinack, 1892 - 1973)은 독일 프랑켄 지방 리넥에서 태어났다. 그는 문학을 시로 시작했으나, 소설과 수필로 영역을 넓혔다. 주로 짤막한 산문(Klenprosa)을 즐겨 발표했다. 작지만 소중한 우리 삶의 이야기를 투명한 감성으로 들려 주었다. 기질적으로 낭만과 서정성의 작가는 장르에 관계없이 생활 주변에서 얻은 서정성이 강한 소재로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이끌어냈다. 안톤 슈낙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1945년 종전과 함께 미국의 포로에서 풀려나 마인 강변에 있는 작은 마을 칼에서 만년을 보냈다.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한 오점으로 그는 독일에서 잊혀 진 무명작가였다. 실망스런 일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외국 수필가의 한 사람이었던 안톤 슈낙의 실망스런 과거는 우리를 슬프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