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서울에서 다시 사랑을
지은이 : 이흔복
펴낸곳 : 실천문학사
십여 년 전 욕심을 내 스무여 권의 시집을 한꺼번에 손에 넣었다. 농촌시를 찾다가 1998 ~ 1999년에 출간된 〈실천문학의 시집〉 시리즈 120번대 시집을 만났다. 시집들은 표지그림을 시인의 사진으로 장식했다. 정기복의 『어떤 청혼』과 고증식의 『환한 저녁』이 그때 만났던 시집이었다. 내가 시인을 처음 접한 글은 거문도 작가 한창훈의 첫 산문집 『한창훈의 향연』을 통해서였다. 술 꽤나 푼다는 섬 출신 소설가가 질린 술 귀신이 시인 이흔복이었다. 시인은 일 년 내내 사시장철 술잔을 손에서 놓아 본 적이 없다는 전설적 술꾼이었다.
시인은 63년 경기 용인 출생으로 86년 문학 무크지 『民意』로 등단했다. 첫 시집은 등단한 지 십 년을 훌쩍 넘겨, 〈실천문학의 시집〉 시리즈 120번으로 1998년에 출간되었다. 다시 십 년이 흐르고 두 번째 시집 『먼 길 가는 나그네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솔, 2007)가 나왔다. 그리고 7년의 시간이 흐른 2014년에 세 번째 시집 『나를 두고 내가 떠나간다』(솔, 2014)가 세상의 빛을 보았다. 등단 한지 3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시인은 그 흔한 산문집 한 권 없이, 시집만 세 권을 내놓았다. 지독한 과작의 시인이었다.
나는 근작 시집을 잡고, 지독한 허무를 노래하는 시인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두 번째 시집은 일찌감치 품절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출간된 지 20여 년을 넘긴 첫 시집이 여전히 살아있었다. 내가 온라인 서적이 아닌, 홈 쇼핑몰을 통해 사들인 두 번째 시집이었다.(첫번째 시집은 문복주의 『우주로의 초대』)였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55편이 실렸다. 해설은 작고한 명천 선생의 「길을 아는 운전수」다. 시인은 소설가 이문구를 친아버지처럼 따랐다. 명천 선생이 세상을 떠났을 때 시인은 문인 대표로 장례를 치렀다.
시편들은 - 삶이란 참으로 어렵다. - 단 한 줄의 「사노라면」(47쪽)에서 6쪽 분량의 「황도리 풍어제」(51 ~ 56쪽)까지 다양했다. 대부분의 시편들은 짧았다. 시인은 미래파로 상징되는 포스트모던한 시풍이 활개치는 시단을 멀리하고, 소월이 떠올려지는 자신만의 고전주의를 구축했다. 선배 시인 김사인은 시인의 작품을 이렇게 격려했다. “소월 이후 소식 듣기 어렵던 전율스러운 허무의 재림이 나는 황홀하고 두렵다.” 시집을 닫는 마지막 시 「하루 해는 지고」(101쪽)의 전문이다.
산다는 것, 철저하게 산다는 것, 그것은 관념인지도 모른다. 관념이 아닌 절실한 소망이게끔 산다는 것, 그것은 절망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