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미안함에 대하여
지은이 : 홍세화
펴낸곳 : 한겨레출판
진보지식인 홍세화(洪世和, 1947 - )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무역회사 파리지사에서 근무한 지 5개월 만에 난민 신세가 되었다. 1974년 박정희 독재정권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고문 조작했다. 국가 전복을 기도했다는 혐의를 씌워 사형 선고 18시간 만에 여덟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사법 살인을 저지르는 국가 폭력의 극악무도에, 유신정권을 무너뜨리려는 이들이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위회)∥으로 모였다. 84명의 조직원이 검거되었다. 중앙위 동지들은 사형을 당하거나 무기징역이 언도되었다. 홍세화는 파리에 있었다는 요행으로 ‘살아남은 자’가 되었다. 1979년 10월 파리에서 일하던 중 졸지에 망명자가 되었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1995)와 『쎄느강은 좌우를 가르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1999)에 그 시절을 담았다. 홍세화는 2002년 23년 만에 영구 귀국했다. 20년 동안 조국은 물신주의物神主義의 수렁에 깊게 빠졌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이후 6년 동안 〈한겨레〉에 쓴 칼럼을 모은 사회비평에세이였다. 1부 ‘인간의 몸은 평등한가’는 노동자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이 땅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산업재해 사망률(한 해 2천명)을 기록하는 나라였다. 2020. 4. 29. 경기 이천의 한 익스프레스 물류창고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38명이 화재로 죽었다. 5. 10 서울 강북 우이동 한 아파트의 경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5. 29.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는 강남역 사거리 철탑에서 355일 만에 내려왔다. 경북 구미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차상호는 굴뚝에 오른 지 400여일이 넘어 땅에 내려올 수 있었다.
2부 ‘ 한 사람이라도 자유롭지 못한다면’은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혐오 풍경을 비판했다. 이 땅 사람들은 2018. 7. 예멘인 500명의 난민 신청을 거부하는 청원에 찬성했다. 한국은 지디피(GDP) 민족주의가 만연한 비열한 나라였다. 백인과 결합한 가족은 ‘글로벌 가족’이었고, 비백인과 결합한 가족은 ‘다문화 가족’ 이었다. 저자는 자신이 앨라이(Ally, 성소수자가 겪는 차별에 반대하고 평등 사회를 위해 연대하는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18세기 영국의 보수주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는 말했다. “선한 사람의 무관심이 악을 키운다”고. 3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의식이 존재를 배반하는 사회에서 교육의 목적과 기능을 생각했다. 제도적 대학 서열 체제는 학생들에게 줄서기를 요구하고 주입식 암기 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비판적 의식을 갖추지 못한 사회 구성원은 차별 체제에 맞서는 대신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4부 ‘가슴엔 불가능한 꿈을 안고’는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에 만연한 가난과 차별의 풍경을 들여다보았다. 헬조선에서 하루에 평균 다섯 명이 산재로 사망하고 38명이 자살했다. 한국은 회한이나 성찰 그리고 그에 따른 눈물은 약자와 피해자의 몫이 되어버린 땅이었다. 승자독식이라는 일그러진 세력 관계가 고착된 이 땅의 사회구성원 인성 평균치는 가해자 쪽에 서 있었다. 5부 ‘갈 길이 멀더라도’는 진보 정치의 현실과 미래를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촛불 정권(?)은 과연 민생과 관련한 재벌·조세·부동산·교육 정책에서 지난 정권과 어떤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가? 문재인 정권의 100대 국정과제에 ‘차별금지법’은 보이지 않았다.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이 산재로 죽은 지가 2년이 지났다. ‘중대재해법’은 넝마가 되었다.
진보 지식인 홍세화의 일갈이 따끔했다. “단지 개탄하는 것으로 자신의 윤리적 우월감을 확인하고 자기만족에 빠져있지 않나... 세상을 혐오하고 개탄하기는 쉬운 일이다. 개탄을 넘어 분노로, 분노를 넘어 참여와 연대와 설득으로 나아가기는 고되다. 의미 있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므로 우리는 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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