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

대빈창 2021. 3. 9. 07:27

 

책이름 :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

지은이 : 알렉산드라 해리스

옮긴이 : 강도은

펴낸곳 : 펄북스

 

지역출판사 《펄북스》를 처음 만난 책은 '지리산 시인‘ 박남준의 등단 30주년 기념 시선집 『중독자』였다. 출판사는 지역서점 《진주문고》가 2015년 2월에 문을 열었다. 진주문고 5층에 자리 잡은 출판사는 편집자 1인 출판사였다. 진주문고 여태훈 대표는 말했다. “인구 35만 도시에 지역의 목소리를 담을 출판사 하나 없어서 되겠느냐는 대의명분으로 시작한 일”이라고. 732쪽의 두터운 양장본에 기울인 출판사의 정성이 예사롭지 않았다. 각주는 모두 386개로 본문 아래에 편집했다. 쉽게 각주를 책 뒤에 달았다면 독자의 손길은 수백 번 번거로울 수밖에 없었다.

문화역사가 알렉산드라 해리스(Alexandra Harris, 1981 - )는 16세기에 지어진 탑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다, 추위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생각했다. 오래전부터 이곳에 머물렀던 사람들도 자신처럼 추위에 떨었을 것이라고. 책은 햇살, 바람, 비, 구름, 안개, 눈보라, 폭풍우, 천둥, 번개, 홍수, 가뭄 등 날씨를 대하는 예술가들의 갖가지 태도와 날씨가 그들의 작품에 미친 영향을 흥미롭게 소개했다. 고대에서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소설, 희곡, 건축, 그림, 시, 일기, 편지 등 거의 모든 분야의 문화적 날씨를 담았다. 60여 점의 아름다운 도판은 책을 읽는 독자들의 눈을 밝게 비추었다.

8 - 9세기에 쓰인 애가(elegy) 『방랑자』의 주인공은 고향에서 추방당해 얼어붙은 바다를 떠돌았다. 영어로 쓰인 가장 오래된 서사시 『베어올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과 『맥베스』, 영문학의 아버지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에드먼드 스펜서의 우화시 『요정여왕』, 제임스 톰슨의 시집 『사계절』,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미술비평가 존 러스킨의 『근대 화가론』까지. 마지막 장은 1988년 타계한 시인 테드 휴즈, 2017년 세상을 떠난 화가 하워드 호지킨, 74세의 현역 작가 줄리언 반스 등이 언급되었다.

알렉산드라 해리스는 수세기에 걸친 방대한 역사적 문헌과 예술작품을 날씨라는 주제로 세심하게 수집 분류했다. 그 알맹이들을 깨알같이 인용했다. 그리고 말했다. “영국 문학은 추위에서 시작했다”고. 마지막 책장을 덮자 나의 뇌리에 강렬한 그림 세 점이 떠올랐다. 독일의 신비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 - 1840)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 - 1838)의 〈솔즈베리 대성당〉. 영국의 빛의 화가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 1775 - 1851)의 〈전함 메르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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