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까치독사

대빈창 2021. 3. 4. 07:00

 

책이름 : 까치독사

지은이 : 이병초

펴낸곳 : 창비

 

표제에 끌려 시집을 손에 넣었다. 표지그림이 살모사의 무늬처럼 보였다. 까치독사는 환경부지정 보호종으로 우리나라 살모사 중 개체수가 가장 적은 희귀종이었다. 작은 외딴섬에 삶터를 꾸린 지 십오 여년이 지났다. 개발지상주의가 미치지 못한 섬은 살아있는 환경으로 뱀이 흔했다. 유혈목이, 물뱀보다 오히려 맹독성 살모사가 자주 눈에 뜨였다. 1998년 시전문지 『시안』 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었다. 4부에 나뉘어 15편씩 60시편이 실렸고, 발문은 문신(시인·문학평론가)의 「내상(內傷)의 침묵을 깁는 일」이었다.

시인은 전라도 고유의 토속어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감칠 맛나고 정감어린 토속어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노래했다. 권력도 돈도 없는 민초의 유일한 무기는 맨 몸뚱이 뿐이었다. 시인은 말했다. “모든 것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자에 비해 서민은 상처를 입어 싸우고 싶어도 한 개 밖에 없는 목숨이 무기다. 까치독사는 고향의 산과 넝쿨사이 추억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들의 오늘이다.”

 

입을 쩍쩍 벌리는 까치독사 한마리 / 더 가까이 오면 독 묻은 이빨로 / 숨통을 물어뜯어버리겠다는 듯이 / 뒤로 물러설 줄도 모르고 내 낌새를 살핀다 - 「까치독사」의 일부분

바늘로 닭 피를 찍어 / 이마빡에 새겼다는 개 혓바닥 문신은 / 평소 아무 티가 없다가 / 술기 오를수록 벌겋게 / 맹독을 문 저주처럼 또렷해졌다 - 「문신」의 일부분

 

가난한 시인은 1984년 뒤늦게 우석대 국문과 야간부에 입학했다. 막노동판 잡부로 등록금을 벌어야만 했다. 선배의 제안으로 등록금 면제 혜택을 받는 도서관 근로학생이 되었다. 낮에 노동판을 떠도는 대신 도서관에서 잔심부름을 하던 시인은 슬픔에 빠졌다. 4·19 혁명이 돌아오면서 학우들은 민주화를 외치며 최루탄에 맞서 화염병을 들고 가투를 벌였다.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군홧발 시대였다. 야간 강의는 밤 10시에 끝났다. 시대적 모순을 온 몸으로 받아들여 광장에 뛰쳐나갈 수 없는 처지가 시인을 슬프게 했다. 마지막은 시집을 여는 첫 시 「봄산」(10쪽)의 전문이다.

 

저 초록색 갈피를 뒤적거리다보면 그 속엔 알 품는 까투리가 친정집 주소 적으려다 솔가지 못 빠져나간 반달을 베낄 것 같고 // 축축한 겨드랑이 말리며 열차 바퀴 소리를 가만가만 재우던 채송화는 어디에 피었나 깜짝 마실 나왔다가 연둣빛 부리를 내민 옥수수알을 반갑게 쪼아댈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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