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
지은이 : 정민
펴낸곳 : 휴머니스트
DAUM 블로그에서 ‘태그’에 올라가는 단어는 20개로 한정된다. 며칠 전 태그 코너에 새로운 단어가 등장했다. 바로 한문학 문헌들에 담긴 전통의 가치를 현대의 언어로 되살려온 고전인문학자 ‘정민’이었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었다. 『일침』, 『조심』, 『석복』,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 『습정』. 초판 1쇄 발행일이 2016. 1. 18. 이었다. 책은 사자성어四字成語, 시, 잠언 등 옛 사람들의 글 속에 담긴 깊은 성찰과 지혜를 살폈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즉 옛 것을 빌어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첫 꼭지 ‘무엇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최소한의 댓가’를 가리키는 중국 전국시대의 정치가·시인 굴원(屈原, BC 343 ? - BC 278 ?)의 『초사楚辭』 「사미인思美人」 편에 나오는 건상유족褰裳濡足에서, 마지막 꼭지 ‘봇 봐줄 꼴불견’을 이르는 당唐나라 이상은(李商隱, 812 - 858)의 『잡찬雜纂』의 살풍경사殺風景事까지 각 부에 25편씩 나뉘어 1백편의 옛글을 실었다. 1부 〈마음 다스리기〉는 마음을 다잡고 나를 돌아보는 마음 공부법, 2부 〈세간의 흥정〉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하여, 3부 〈내려놓기의 기쁨〉은 삶의 여유 찾는 방법과 일이 순리대로 흐르는 방법을, 4부 〈숫자로 세상 읽기〉는 숫자와 관련된 사자성어로 세상 읽기를 시도했다.
무료불평無聊不平은 재주를 품었으나 세상은 나를 외면하고 쓸모없는 사람 취급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사회가 건강하려면 사회구성원들의 무료불평을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시켜야 한다. 자발적 의지가 박약하면 술 먹고 행패로 풀게 된다. 되돌아본 나의 젊은 시절 모습이었다. 용지허실用之虛實은 인품을 중요시여긴 다산이 제자 황상에게 준 증언첩에 실린 말로 ‘쓸모없는 쓸모’를 이른다. ‘실용’을 외치며 안주머니에 돈을 우겨넣던 낯짝 뻔뻔한 그가 떠올랐다. 다산은 일갈했다. 돈만 따지는 것은 시정잡배들이나 하는 짓이다. ‘못 견딜 시련을 창조의 시간으로’ 승화시킨 이덕리의 삶이 토굴사관土窟四關이었다. 이덕리(李德履, 1728- ?)는 1776년 상소 사건에 연루되어 진도에 유배되었다. 19년 유배 생활 끝에 영암으로 옮겨졌다가 고향 땅도 밟지 못하고 비운의 생을 마쳤다. 그는 절망의 나락 속에서 국방 시스템의 놀라운 제안을 담은 『상두지桑土志』를 저술했고, 그 재원 마련으로 중국과의 차 무역을 구상한 『동다기東茶記』를 지었다.
나의 눈길이 가장 오래 머문 꼭지는 시지인길尸至人吉로 김정국(金正國 , 1485 - 1541)의 『사재척언思齋摭言』에 나왔다. “세상 사람 중에 집을 크고 화려하게 짓고 거처가 사치스러워 분수에 넘치는 자는 머잖아 화를 당하지 않음이 없다. 작은 집에 거친 옷으로 검소하게 사는 사람이라야 마침내 이름과 지위를 누린다”(24쪽)는 뜻이 담겼다. 큰 집 옥屋을 파자破字하면 시지尸至, 즉 송장에 이르는 말이 된다. 작은 집 사舍는 쪼개서 읽으면 인길人吉, 즉 사람이 길하다는 뜻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