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마야꼬프스끼 선집
지은이 : 블라지미르 마야꼬프스끼
옮긴이 : 석영중
펴낸곳 : 열린책들
몇 권의 책을 온라인 서적에 주문했다. 그중의 한 권이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책세상, 2005)였다. 하지만 며칠 지나 품절이라는 연락이 왔다. 괜히 마음이 급해졌다. 20세기 러시아의 위대한 혁명시인 블라지미르 마야꼬프스끼(vladimir Maiakovskii, 1893 - 1930)는 80년대 학창시절 귀에 익은 시인이었다. 막상 시로 접하기까지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혁명시인 김남주가 옥중에 갇힌 채 한자한자 은박지에 새긴 번역시집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에 실린 12편의 시詩였다. 그때 책이 눈에 띄었다.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찍어 낸 『마야꼬프스끼 선집』 이었다. 369쪽의 시선집은 제법 책술이 두꺼웠다. 시 18편(「좋아! - 10월 혁명의 시」는 무려 123쪽 분량의 장시였다)과 산문 3편(「어떻게 시를 만들 것인가」는 마야꼬프스끼의 시론詩論이었다), 노어학자 석영중의 역자해설 「마야꼬프스끼의 삶과 죽음과 시」 그리고 시인의 연보로 구성되었다. 책 말미에 56개의 각주가 붙어 글을 읽어나가는 독자는 불편했다. 짧은 주석을 본문 밑에 달았다면.
마야꼬프스끼는 1893년 7월 19일 그루지야 꾸따이스 근처의 작은 마을 바그다지에서 태어났다. 그는 15세 때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노동당에 가입했다. 볼세비키파로 활동하던 그는 어린 나이에 세 번의 체포와 독방 구금을 당했다. 사건은 혁명이 성공한 후 소비에뜨 작가들의 열렬한 찬양의 근거가 되었다. 1910년대 러시아 미래주의는 혁명의 예술로 인정받았다. 중심인물 마야꼬프스끼는 혁명 시인이 되었다. 미래주의 선언문 「대중적 취향에 따귀를」(1912)에서 미래주의는 과거의 모든 것을 대대적으로 청산할 것을 주창했다. 혁명은 경제·정치 영역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발맞추어 예술 영역에서 미래주의 독재가 선포되었다. 미래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문학은 동의어가 되었다. 레닌이 죽자 마야꼬프스끼는 혁명가의 죽음을 추모하는 무려 4천행에 달하는 「블라지미르 일리치 레닌」을 발표했다. 하지만 소비에뜨 사회가 새로운 체제로 정착되면서 혁명 시인의 삶은 고난과 모순에 휩싸였다. 마야꼬프스끼는 1930년 4월 14일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혁명 시인은 죽기 전에 유서를 남겼다. “나의 죽음에 대해서 그 누구도 탓하지 마오. 그리고 이야기 거리로 만들지 말아주오. 죽은 자는 가십을 싫어하오. 어머니, 누이, 동지들이여, 나를 용서하오. 이게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나로서는 다른 출구가 없었소.” 마지막은 1914년에 발표된 「그러나 어쨌든」(13 - 14쪽)의 첫 연과 마지막 연이다.
거리는 매독 환자의 코처럼 사라지고 / 정욕의 강은 침처럼 흘러갔다 / 유월의 정원은 마지막 속옷까지 벗어던지고 / 파렴치하게 앓아누웠다. // (······) // 그리고 신은 내 책을 읽고 울음을 터뜨리리라! / 이건 말이 아니라 둥글둥글 뭉쳐진 경련이구나 / 신은 내 시집을 겨드랑이에 끼고 하늘을 돌아다니고 / 한숨을 쉬며 친구들에게 읽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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