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사피엔스
지은이 : 유발 하라리
옮긴이 : 조현욱
펴낸곳 : 김영사
나는 자칭 활자중독자지만 예나 지금이나 베스트셀러에 눈길 주기를 머뭇거렸다. 이 땅에서 군홧발 독재가 활개를 치던 시절, 베스트셀러도 조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책은 2011년 이스라엘에서 히브리어로 출간된 이래 30개 언어로 번역된 국제적 베스트셀러였다. 우리의 독서문화는 책을 고르는 안목을 키우기보다 베스트셀러에 불나방처럼 몰렸다. 책 안 읽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이 땅의 호모 사피엔스는 세계적 유행을 타고『사피엔스』를 2015년에 만날 수 있었다. 유행에 눈을 흘겼던 나는 5년 여가 지나서야 군립도서관의 책을 대여했다.
유발 하라리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에게 가장 큰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매우 큰 질문들을 제기하고 여기에 과학적으로 답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총·균·쇠』는 보여주었다.” 재레미 다이아몬드는 표사에서 말했다. “역사와 현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책” 나의 삐딱한 시선으로 동업자의 직업의식으로 보였다. 표사는 하나같이 글로벌 자본주의의 승리자들로 IT산업 CEO들의 찬사였다.
생태사상가 故 김종철(1947 - 2020) 선생은 마지막 글 「코로나 시즌, 12개의 단상」(녹색평론 173호)에서 말했다. "최근 세계적 지적 총아로 등극한 유발 하라리는 세계의 미래에 관해서 자기가 가장 잘 안다는 듯이 예언자 행세를 거침없이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 자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어두운 예언을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점으로서, 소위 지식인이라는 자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책은 군립도서관의 온라인에서 항상 대여중이었다. 베스트셀러답게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나는 책을 잡을 수 있었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1976 - )는 이스라엘 출신의 젊은 역사학자였다. 인류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를 탐색한 '인류 3부작' ,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전 세계 50개국에서 1,600만부가 출간된 글로벌 베스트셀러였다. 『사피엔스』는 지구 변방의 젊은 역사학자를 일약 세계 지식인의 중심으로 밀어 올렸다. 유발 하라리는 역사를 읽는 포괄적인 시선과 방대한 이야기를 정교하게 펼쳤다. 인류의 기원과 발전,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력적인 문장으로 풀어내 독자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한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감상한 느낌이었다. 술술 익히는 글줄은 전적으로 옮긴이 조현욱의 박학다식에 크게 힘입었다.
빅뱅이 일어난 우주의 탄생은 138억 년 전으로 물리학의 탄생이었다. 38억 년 전에 태어난 지구의 생명은 생물학의 탄생이었다. 20만 년 전에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는7만 년 전부터 문화를 출현시켜 역사학을 탄생시켰다. 과거에서 오늘날까지 수만 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인류의 진로를 형성한 것은 세 가지 대혁명이었다. 7만년 전에 일어난 인지認知 혁명과 1만2000년 전에 일어난 농업혁명 그리고 불과 500년 전에 일어난 과학혁명이었다. 『사피엔스』는 인류의 운명을 이끌어 온 세 가지 혁명과 그를 둘러싼 생명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거시적으로 분석·설명했다.
인류는 1만2천 년 전부터 곡물 경작에 더 많은 노동을 집중시켰다. 농업은 수천 년 전부터 서서히 진행되었다. 정착생활로 식량공급이 증가하면서 인간과 가축화된 동물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1만년전 아프로시아(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몇 지역에 몇 백만 마리의 양, 소, 돼지, 염소, 닭이 살고 있었다. 농업혁명이후 지구에 가장 널리 퍼진 대형 포유류는 사람이 첫째이고, 2, 3, 4위가 가축화된 소, 돼지, 양이었다. 무게로 따지면 오늘날 지구상의 70억명이 넘는 사피엔스는 약 3억 톤, 가축화된 모든 농장동물 - 암소, 돼지, 양, 닭은 약 7억 톤, 현재 살아있는 대형 야생돌물 -호저, 펭귄, 코끼리, 고래 등은 약 1억 톤에 불과했다.
5백년 전의 과학혁명은 현재 자본주의의 글로벌화로 지구의 생태계 파괴가 극을 향해 치달았다. 250년 전 산업혁명, 50년 전 정보혁명 그리고 생명공학 혁명으로 이어졌다. 인간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여 길가메시 프로젝트(‘길가메시’는 죽음을 없애버리려 했던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영웅)를 진행시켰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프로젝트의 성공을 믿었다. 즉 생명공학적 신인류의 탄생이 멀지 않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나는 <식민지근대화론>의 안병직과 그의 제자 『반일 종족주의』의 이영훈을 떠올렸다. 일본군국주의의 광기에 생체실험을 당했던 식민지 후손으로 너무 예민한 것인가. 유발 하라리는 나에게 제국주의자로 비쳐졌다. 그는 21세기를 사는 대부분의 인류는 어디에 속하던 제국의 후예들이라고 강조했다.
“아직 남아있는 인류의 문화적 성취 중 상당한 몫은 제국이 피정복민을 착취한 덕분에 생겨날 수 있었다.”(278쪽)
“제국에 의해 축적된 새로운 지식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피지배 민족을 이롭게 하고 이들에게 '진보'의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4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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