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능으로 가는 길
지은이 : 강석경
찍은이 : 강운구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오릉 / 석탈해왕릉 / 헌강왕릉 / 삼릉 / 대능원 / 황남대총 / 천마총 / 진덕왕릉 / 선덕왕릉 / 무열왕릉 / 서악고분군 / 문무왕릉 / 대왕암 / 노서동 고분군 / 금관총 / 서봉총 / 호우총 / 진평왕릉 / 신문왕릉 / 성덕왕릉 / 경덕왕릉 / 괘릉 / 흥덕왕릉 / 노동동 고분군 / 금령총 / 식리총 / 봉황대
작가의 발길이 닿은 역사의 고도古都 경주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수십 기의 대형고분이었다. 표지사진은 1,5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느티나무와 오동나무가 고목으로 자란 높이 22미터로 단일고분으로 경주에서 가장 큰 봉황대鳳凰臺였다. 나는 책을 잡고서 알았다. 엄밀한 고증 없이 왕릉이 지정되어 현재까지 학자들 간에 진위 여부에 대한 논증이 끊이지 않았다. 묘비가 없는 왕릉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채 조선 전기까지 왕릉 11기와 김유신 묘만 전해져왔다. 혁거세릉, 미추왕릉, 법흥왕릉, 진흥왕릉, 선덕여왕릉, 효소왕릉, 성덕왕릉, 헌덕왕릉, 흥덕왕릉과 김유신묘, 그리고 능비가 존재하는 무열왕릉, 대왕암까지였다. 조선후기에 추가된 7기 왕릉과 1900년 이후 추가된 8기 왕릉과 묘 7기가 논란의 대상이었다.
작가와 함께 능으로 향하거나, 능에서 만난 이는 경주 화가 자희, 재야운동가·시인 비비아나, 고분공원을 아름답게 만들려고 시장이 되고 싶다는 곱게 늙어가는 경주 토박이 할머니, 경주박물관장 강우방, 은사 조각가 최종태. 미문美文의 글줄에 고명처럼 얹힌 시들. 서정주의 「꽃밭의 독백」, 헤씨이도스의 「노동과 나날」, 양지스님의 「풍요豊謠」, 조선 유학자 김종직의 「회소곡會蘇曲」, 류시화의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충담사의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월명의 「도솔가」 등.
산문집은 거대한 왕릉들이 담처럼 둘러서 있는 경주를 산책하며 길어 올린 사유의 결과물이었다. 경주의 왕릉을 배경으로 문명, 집착, 유목민의 꿈, 슬픔, 고독, 위로, 민초들의 꿈, 남성적인 것, 아름다움, 영혼, 여성적인 것 등 11개의 테마로 구성되었다. 작가는 깊이 있는 세밀함으로 경주의 고분들을 들여다보았다. 사진작가는 천년의 세월 속에 자연과 하나가 된 고분의 사계절 풍광을 렌즈에 담아 은은한 향기를 더했다. 천오백년의 세월 속에 왕릉은 사람의 삶에 성큼 발걸음을 내밀었고, 사람들은 그 품에 안겨 위안을 받았다. ‘산처럼 높은 고분으로 아이들이 올라가고 있다. 천오백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동네의 동산이 되고 놀이터가 된 무덤. (······) 아이들 발길에 가르마가 난 고분 위로 뭉게구름이 흘러간다.’(176 - 177쪽)
작가가 경주에 자리 잡은 계기는 향토사학자 故 윤경렬(1916 - 1999) 선생과의 인연에서 비롯되었다. 1984년 작가는 예술가들과의 인터뷰한 글을 한 문예지에 연재 중이었다. 토우제작가를 취재하기 위해 작가는 경주로 향했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책장의 책을 꺼내 들었다. 『마지막 신라인 윤경렬』(학고재, 1997). 마음이 급해졌다. 작가의 또다른 경주 에세이 『이 고도를 사랑한다』를 잡아야겠다. 나의 마음은 남은 생을 경주에서 소일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가득해졌다. 작가는 말했다. “나의 전생 같은 유목민의 흔적이 묻힌 신라의 능들. 경주는 역사 속에서 되찾은 이상향이며 나는 귀향의 평화를 침범 받지 않기 위해 덧없는 인연들을 끊고 달팽이처럼 칩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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