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나무야 나무야

대빈창 2022. 6. 15. 07:00

 

책이름 : 나무야 나무야

지은이 : 신영복

펴낸곳 : 돌베개

 

책의 초판 1쇄는 1996년 9월이었다. 내가 가진 책은 초판 5쇄로 그해 10월에 발행되었다. 故 신영복(申榮福, 1941-2016년) 선생을 처음 접한 책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햇빛출판사, 1988)으로 1990년도에 처음 만났다. 『나무야 나무야』는 20년 20일 만에 출소한 선생이 8년 만에 낸 본격적인 첫 저서였다. 신영복 선생은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1968년(27살)에 구속되어, 1988년(47살)에 가석방되었다.

책은 강화대교가 내려다보이는 낡은 건물의 2층 사무실 동료의 책상위에 올려져있었다. 아! 선생의 책이 나왔구나. 나는 읍내 서점으로 달려갔다. 158쪽 얇은 부피의 책을 집어 들었지만 나의 가슴은 묵직해졌다. 그 시절, 세계는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의 전일적 지배가 강화되고 있었다. 선생은 세기말의 상황에서 희망을 찾아 나섰는지 모르겠다. 선생의 화두는 여전히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었다. 편지 형식의 기행문 『나무야 나무야』는 전국 25곳을 답사하면서 국토와 역사에 대해 사색한 25편의 글을 그림, 사진과 함께 엮었다.

 

밀양 얼음골의 허준 / 임진강 반구정의 황희와 강남 압구정의 한명회 / 울진 소광리 솔숲 / 경기 광주 허난설헌 묘 / 백담사 만해·일해 / 모악산 금산사의 미륵 / 강화 하일리의 강화학파 / 성산 일출봉 새해 일출 / 서울 북한산 / 천수관음보살의 손 / 화순 폐교 초등학교 / 단양 온달산성의 온달과 평강공주 / 영월 청령포의 단종 / 수능시험을 치룬 젊은이 / 한산도 충무공 / 가야산 홍류동의 최치원 / 산청 지리산의 남명 / 섬진강 나루 / 팔공산 백흥암 / 북한강가 / 강릉 단오제 / 광주 무등산 / 이천 도가니 가마 / 부여 백화암 / 강화 철산리

 

첫 글은 선생의 고향 경북 밀양에서 시작되었다. 20년의 징역살이와 7년여의 칩거 후에 선생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소설 『동의보감』의 무대였던 얼음골이었다. 선생은 어두워오는 얼음골에 앉아 “한 사람의 허준이 있기까지 그의 성장을 위하여 바쳐진 수많은 사람의 애정과 헌신”(15쪽)을 생각했다. 마지막 글은 남쪽 땅을 흘러 온 한강과 휴전선 철조망을 뚫고 흘러 온 임진강과 북녘 땅을 흘러 온 예성강이 만나는 강화도의 북쪽 끝 철산리였다. 바다를 앞두고 멈칫거리는 강물을 바라보며 선생은 “인간의 존엄이 망각되고 겨레의 삶이 동강난 채 증오와 불신을 키우며 우리의 소중한 역량을 헛되이 소모해온 부끄러운 자화상”(156쪽)을 떠올렸다.

강화도의 서쪽 끝 하일리霞逸里에서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선생은 지식인의 참된 자세에 대해 사색했다. 하곡 정제두(霞谷 鄭齊斗, 1649 ~ 1736년)는 당쟁이 격화되던 조선중기 서울을 떠나 진강산 남쪽 기슭 하일리에 터를 잡았다. 250년 강화학파江華學派의 시작이었다. 공소空疎한 논쟁에 휘말려 파당을 일삼는, 학문을 영달의 수단으로 삼는 주자학과 결별한 것이다. 강화학파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지식인의 자세를 준엄하게 견지했다. 그들은 인간의 문제와 민족의 문제를 가장 실천적으로 고민했던 학파였다. 볕 좋은 날 막걸리 한 병 들고 하곡의 묘소에 발걸음을 해야겠다.

 

“이곳 하일리에서는 오늘 저녁의 일몰에서 내일 아침의 일출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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