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먼 길 가는 나그네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대빈창 2022. 6. 10. 07:00

 

 

책이름 : 먼 길 가는 나그네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지은이 : 이흔복

펴낸곳 : 솔

 

삶이란 잠시 지나는 그림자에 불과한가. 끊임없이 나로부터 멀어지는······ 멀어져만 가는 계미년 겨울, 봄이 그리 멀지 않은 어느 날 밤 선생은 순간 매순간 새로운 속세의 시간을 놓으셨다. 허망한 느낌뿐이다. 여한이 없다는 말씀에 나는 그만 엉엉 울고 말았다. 그렇게 눈 깜박할 사이 너무도 당연하게? 가신 것이다. // 관촌冠村 부엉재, 가로다지 길 침묵이 깊다. 이곳은 선생이 생과 사를 함께한 영원한 고향! 벌써 날은 저뭇하고 그림자마저 흔적 없다.

 

‘명천鳴川 선생을 추억함’이라는 부제가 붙은 「그렇게 겨울이 가고 꿈인 것처럼 또 겨울이 왔다」(37-38쪽)의 1・2연이다. 시인은 지금까지 네 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나를 두고 내가 떠나간다』(솔, 2014) / 『서울에서 다시 사랑을』(실천문학사, 1998) / 『먼 길 가는 나그네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솔, 2007) / 『내 생에 아름다운 봄날』(b, 2021) 내가 잡은 또는 잡을 시집 순서였다.

세 번째 시집을 잡고, 1986년 무크지 『민의民意』로 등단한 시인의 12년 만에 나온 첫 시집을 어렵게 손에 넣었다. 첫 시집의 발문은 명천 이문구의 「길을 아는 운전수」였다. 시인은 명천 선생을 항상 모시고 다녔다. 편집증적 강박증일까. 품절된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을 찾을 수 없어 몹시 아쉬웠다. 시인 유용주의 산문집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걷는사람, 2018)를 잡고 시인의 소식을 뒤늦게 알았다. 시인은 2015년 9월에 쓰러졌고, 아직도 투병 중이었다.

네 번째 시집이 출간되었다. 시인대신 펴낸이의 |서문|이 실려 있었다. 시인이 펴낸 모든 시집을 잡을 독자로 나는 시인의 빠른 쾌차를 기원했다. 군립도서관 검색창에 ‘이흔복’을 입력했다. 시인의 시집에서 유일하게 두 번째 시집이 있었다. 아무래도 인연이었다. 시집은 첫 시집이후 10년 만에 나왔다. 출간된 지 15여 년이 지났지만 손때하나 묻지 않았다. 새 시집의 잉크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시집은 부 구분 없이 46편이 실렸고, 해설은 문학평론가 이경철의 「한때 나였고 또 다시 나일 우주만물에 닿은 소리, 시」였다. 시편 곳곳에 시인이 그리워하는 사람이 호명되었다. 가수 장사익, 소설가 한창훈, 故 명천鳴川 이문구, 아들, 나타나엘(시인의 가톨릭 세례명), 두보, 미술애호가 소운紹芸 선생, 장운갑 형 등. 시인 김사인, 문학평론가 임우기의 두 편의 표사가 실렸다. 김사인은 말했다. “한 허무가 여기 있다. 이 노곤하고 아득한 마음의 행보는 세상에 속한 자의 것이 아닌 듯하다. 무심함이 아니라, 어디선가 넋을 놓은―또는 놓친―것이다. 가엾고 무섭고 슬프다.” 마지막은 시집을 닫는 시 「다시 낮술을 들며」(72쪽)의 전문이다.

 

나도 가끔은 내 그림자를 따라 멀리 떠나고 싶었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학자의 아침  (0) 2022.06.17
나무야 나무야  (0) 2022.06.15
전환의 시대  (0) 2022.06.08
지리산 둘레길  (0) 2022.05.30
발언 Ⅲ  (0) 2022.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