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런던 스케치
지은이 : 도리스 레싱
옮긴이 : 서숙
펴낸곳 : 민음사
나의 독서에서 외국소설은 백안시되었다. 정서상 공감이 쉽지 않다는 이유였다. 표도르 도스토프예스키, L. N. 톨스토이, 나쓰메 소세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G. 마르케스, 이탈로 칼비노, 이시무레 미치코 등 몇 권의 소설이 책장 한 구석에 자리 잡았을 뿐이다. 나의 손에 낯선 작가 도리스 레싱의 소설이 들려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연이었다.
내가 온라인 서적에서 구입한 첫 책은 2000. 3. 빈민운동가 제정구의 자서전 『가짐 없는 큰 자유』였다. 지금까지 네 자리 숫자의 책을 받았지만, 어이없는 배달사고는 처음이었다. 2-3년 전부터 부피가 작은 시집을 주로 주문했는데, 엉뚱한 소설 한 권이 택배로 날아왔다. 반품은 택배기사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앵무새 같은 답변만 이어졌다. 서해의 작은 외딴섬에서 반품은 불가능했다.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온라인 서적에 책값을 송금하고 소설을 손에 넣었다.
옮긴이 서숙은 오래전 녹색평론사에서 출간된 산문집 『따뜻한 뿌리』(2003)로 낯이 익었다. 도리스 레싱(Doris May Lessing)은 1919년 페르시아(이란)에서 이민자 영국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1925년 다섯 살 때 영국의 식민지였던 짐바브웨의 옥수수농장으로 이사했다. 1949년 서른살 때 영국 런던으로 왔다. 그녀는 시・소설・희곡 등을 넘나드는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다. 인종주의・반전反戰・성性・페미니즘・계급사회・체제모순 등 20세기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광범위하고 첨예한 주제들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그녀는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여성으로 11번째 였다. 당시 86세였던 그녀는 역대 수상자 중 최고령이었다. 1992년 런던에서 출간된 소설집은, 우리나라에서 2003년 8월에 초판이 나왔다. 내가 잡은 책은 2021년 11월 36쇄판 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선정되고 이 땅에서 폭발적인 판매부수를 기록했을 것이다. 그녀는 2013년 향년 94세로 별세했다.
『런던 스케치』는 1987-1992년에 발표된, 짧은 소설 열여덟 편이 묶였다. 5쪽의 「원칙」에서 49쪽의 「진실」까지 분량이 다양했다. 소설집은 카페, 공원, 병동, 교통체증, 응급실, 공항 청사, 택시, 레스토랑, 지하철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런던 사람들의 삶을 예리하면서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스케치(Sketch)성의 작품들과.
임신한 여학생이 가출하여 또래 집에 묵다가 낡은 창고에서 혼자 사생아를 낳는 「데비와 줄리」, 3년동안 소원하게 지내던 엄마와 딸이 장미농원에서 오랜만에 우연히 만났으나 좁혀지지 않는 간극을 그린 「장미밭에서」, 결혼 10년 만에 이혼한 전 남편이, 아내가 애인이 생기자 자신을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갈등을 다룬 「흙구덩이」, 재혼 약속을 한 남자가 딸 문제로 이혼한 전처와 계속 만나는 상황을 괴로워하는 여성의 심리를 그린 「진실」 등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보여주는 스토리(Story)성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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