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나는 지리산에 산다
지은이 : 이원규
펴낸곳 : Human&Books
내가 잡은 시인 이원규의 첫 책은 산문집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오픈하우스, 2011)였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이 흘렀고, 시인은 책을 쏟아냈다. 11년 만의 신작 시집 『달빛을 깨물다』(천년의사랑, 2019)와 시사진집 『그대 불면의 눈꺼풀이여』(역락, 2019), 포토에세이 『나는 지리산에 산다』(Human&Books, 2011)를 연이어 잡았다.
책은 지리산 입산 23년째 시인의 완성본이었다. 1부 ‘나는 23째 입산 중이다’ 12편, 2부 ‘야생화가 나를 살렸다’ 9편, 3부 ‘살아 춤추는 지상의 별’ 16편, 모두 47편의 글이 실렸다. 시인의 지리산행과 야생화 탐구와 별과의 교신을 기록한 글과 영혼이 담긴 사진 100컷을 실었다. 23년 전 시인은 잘나가던 서울의 신문사 편집국를 때려치우고 무작정 전라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시인은 여덟 번을 빈집을 찾아 이사 다녔다. 지금은 섬진강 건너 백운산 자락의 외압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시인은 10여 년 동안 5대강을 돌며 3만리 이상을 걸었고, 모터사이클로 한반도 남쪽의 국도・지방도 110만㎞, 지구 27바퀴 이상을 달렸다. 낙동강・지리산 도보순례, 새만금 삼보일배, 생명평화 탁발순례, 대운하반대 4대강 순례, 지리산에서 임진각까지 이어진 오체투지 등 여러 순례단의 총괄팀장을 맡아 길바닥에서 살다보니 결핵성늑막염이 찾아왔다. 몸이 무너졌을 때 야생화가 시인의 몸을 살렸다.
1부는 안개와 구름 속에 이따금씩 얼굴을 내미는 야생화들 ‘몽유문무화夢遊雲霧花’를 사진에 담았다. 감나무, 오동나무, 소나무, 수양버들 등 토종나무를 찾아다니며 ‘별나무’ 사진을 찍었다. 환하게 꽃핀 별나무 한 컷을 잡으려면 3년 이상이 걸렸다. 섬진강의 첫 매화는 소학정消鶴亭의 백매와 다사마을 길갓집의 홍매. 40년 된 누옥을 수리한 섬진강 미니갤러리 겸 사랑방 ‘몽유夢遊’. 고향 경북 문경의 『세계의문학』 1호 등단자 국어선생 조욱현. 시인의 어린시절 목소리를 기억하는 점방 맹인 김씨 아저씨. 제주도 두모악 갤러리의 사진작가 故 김영갑 형.
2부는 하동 오지 논골마을 무덤가 할미꽃. 10년 만에 만난 하중대 마을을 나오는 꽃상여. 강원 평창 연지물매화(붉은 립스틱 물매화). 금강산과 강원북부 높은 산 두 곳에만 사는 금강초롱. 시인이 70년 만에 찾아낸 ‘남바람꽃’ 구례 자생지. 이백의 사연이 깃든 중국 황산 몽필생화夢筆生花. 시인이 여섯 살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던 빨치산 출신으로 탄광생활을 하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건네준 장난감 말 .
3부는 지리산 뱀사골 와운마을 ‘지리산 천년송’의 유성우流星雨. 환갑도 되기 전 폐암으로 죽은 광부 작은 형. 바이칼 호수 알혼섬의 은하수. 산비탈 무덤가의 100년 된 매화나무・폐사지의 천년 석탑의 은하수. 대마도의 수천 마리 반딧불이 서식지. 칠월칠석 황매산 9부 능선의 한밤중 은하수를 잡은 사진이 빚은 'UFO 소동'. 환계還戒 선언 후 종적감춘 수경스님의 「공양송」. 미얀마 사가잉 야자수 은하수. 지리산 오지 계곡의 애반딧불이 혼인비행. 시인은 지리산에 입산한 후 한 문장을 가슴에 새겼다.
“우리가 오기 전에도 지리산은 있어왔고 우리가 떠난 뒤에도 섬진강은 유장하게 흐를 것이다······”
시인의 삶의 여정은 고향 20년, 도시 타향살이 15년, 지리산 23년 이었다. 지리산 살이의 한 매듭을 지으며, 시인은 남은 생에 대한 고민은 깊어졌다. “이제 새로운 길을 도모할 때가 왔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시작하기도 어렵고 끝내기도 어렵다. 하지만 초심으로 여여하다면 그 무슨 일, 그 어느 곳이 두려울까. 일단 촌두부처럼 내 몸과 마음부터 다져야겠다.”(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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