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눈사람 자살 사건

대빈창 2022. 9. 6. 07:00

 

책이름 : 눈사람 자살 사건

지은이 : 최승호

펴낸곳 : 달아실

 

『눈사람 자살 사건』(달아실, 2019)은 시인 최승호의 우화집 『황금털 사자』(해냄, 1997)의 개정판이다. 22년 만의 새 얼굴의 북 디자인은 화가・시인 박상순의 몫이었다. 시인은 표제를 바꾸었고, 내용도 많은 부분 손을 보았다고 한다. 웬만한 산문시보다 짧은 한 쪽 분량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가장 긴 글이 5쪽의 「낚시꾼을 끌고 간 물고기」였다.

74편의 우화寓話와 에곤 실레, 프란시스코 고야, 빈센트 반 고흐, 구스타프 클림트, 클로드 모네, 바실리 칸딘스키, 피터르 브뤼헐, 에드바르 뭉크 등의 그림 43점이 실렸다. 짧은 글들이지만 시인은 삶이란 무엇인지, 인간관계란 어떠해야 하는지, 인간과 자연의 생태계에 대하여 독자들에게 슬며시 물음표를 던져 놓았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14쪽)

 

표제작 「눈사람 자살 사건」을 읽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시였다고, 어떤 이는 다시는 자살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는 편지를 시인에게 보내왔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인 지 요즘 겨울은 쌓인 눈을 보기도 쉽지 않았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송이들은 땅에 닿자마자 녹아버렸다. 어렸을 적 겨울은 삼한사온이 뚜렷했다. 겨우내 내린 눈은 마당 한 구석에 쌓였다가 봄 햇살이 퍼져야 자취를 감추었다. 내가 살던 김포 옛집은 고개 꼭대기에 앉아 한겨울 북풍한설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조립식 담장이 무너져 방문을 열면 찬바람이 곧바로 얼굴로 들이닥쳤다.

마당의 눈을 넉가래로 밀어 뒤울안의 부엌 샛문과 마을회관 외벽 사이 공간에 쌓았다. 어머니는 개숫물을 쌓인 눈더미에 훠~~이 입소리를 내며 쏟아 부었다. 나는 잠이 덜 깬 눈을 부비며 오줌을 누웠다. 눈더미에 노란 오줌 구멍이 뚫렸다. 눈더미는 겨우내 녹다 쌓이다를 반복했다. 어느날 아궁이의 타다 남은 숯 토막으로 그려진 눈과 코와 입을 가진 작은 눈사람이 서있었다.

시인은 말했다. “문명은 뭇 생명들을 멸종시키며 발전하는지 모르겠으나 현대인은 퇴행退行을 거듭하며 갈수록 창백해지는 것은 아닌지” 마지막은 가장 짧은 글 「열등감」(144쪽)의 전문이다.

 

황소개구리에 놀란 도롱뇽이 바위 그늘에 모여서 깨알만 한 심장을 할딱이며 말했다.

“우리 조상님은 공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