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다독임
지은이 : 오은
펴낸곳 : 난다
그동안 나는 시인의 책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민음사, 2009),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문학동네, 2013), 『유에서 유』(문학과지성사, 2016) 세 권의 시집을 잡았다. 새로 문을 연 《지혜의 숲》도서관에서 시인의 근간 산문집을 발견하고, 유쾌한 말놀이와 단어가 제공하는 재미가 유별났던 시편들을 떠올렸다. 『다독임』은 2014년 10월부터 2020년 3월까지 〈한국일보〉, 〈경향신문〉에 연재한 글들에서 선選하고 다듬었고, 『대산문화』에 발표한 한 편의 글을 실은 산문집이었다. 7부에 나누어 실린 79편의 글들은 발표 순서대로 차례로 엮었고, 분량은 1․2부가 두 쪽, 3부 부터는 4-5쪽으로 읽어나가기에 부담이 없었다.
국어사전을 들추는 것이 취미인 시인답게 첫 글은 순우리말 ‘입고프다 - 자유롭고 숨김없이 말을 하고 싶다’와 ‘귀고프다 - 실컷 듣고 싶다’에 대한 풀이였다. 매년 이 땅의 우체통 수백 개가 사라지고 있다. 석 달 동안 한 통의 편지도 담겨지지 않은 우체통은 철거대상이었다. 우체통과 함께 공중전화부스도 철거된 지 오래되었다. 골동품 목록에 우체통과 공중전화부스는 들어가야 할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와 다가오는 총선을 대하며 시인은 말했다. “분명한 것은 세상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수록 질문 역시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묻는 것이 두려워질수록 삶은 생기를 잃는다.”(107쪽) 칠레의 혁명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대서사시 『모두의 노래』의 한 구절이다. - 질서와 침묵에 익숙해진 이들, / 돌이 그러하듯 - “질서에 익숙해져 아무 생각없이 ‘대충’을 받아들이고 차마 침묵할 수 없어 ‘그냥’을 불어들이면 우리는 언젠가 ‘돌’의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126쪽)
무너지고 난 후에야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지, 힘든 상황일수록 그것을 지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절절히 깨닫게 된다.(138쪽)
보통, 병과 아픔과 슬픔은 갑자기 찾아오고 아주 천천히 회복된다.(203쪽)
노모의 기력이 급작스럽게 떨어지셨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어하셨다. 무너진 일상을 떠받드는 책임은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되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주위 사람들에게 원망어린 시선을 보내는 내가 점점 낯설어졌다. 다행스럽게 어머니가 기력을 천천히 회복하고 계셨다. 힘을 내야겠다.
‘다독多讀의 시인’답께 많은 꼭지에 수많은 시, 산문, 소설, 에세이가 인용되었다. 시편詩篇으로 기형도의 「엄마 걱정」, 조용미의 「유적」, 진은영의 「가족」,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 소설은 허수경의 『박하』, 백수린의 『친애하고, 친애하는』,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 에세이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김소연의 『한 글자 사전』, 김병익의 『인연 없는 것들과의 인연』······. 현직의사 김선영의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 사회학자 김신식의 『다소 곤란한 감정』, 독일 영화감독 빔 벤더스의 사진에세이 『한번은』 등.
시인의 명함에 적힌 글귀다 “이따금 쓰지만 항상 쓴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살지만 이따금 살아있다고 느낍니다.” 그는 본연의 읽고 쓰는 시인으로, 대학 강사로, 온라인 서적 YES24의 팟캐스트 〈책읽아웃〉의 진행자로, JTBC의 〈시사토크 세대공감〉 출연자로 어색함과 익숙함 사이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다독임은 “남의 약한 점을 따뜻이 어루만져 감싸고 달래는” 행위다. 이는 힘 센 자가 아닌 약한 자에게 절로 하는 행위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나는 어떤 다독임을 받았을까. 표지그림은 신소영의 〈너랑 같이〉로 곰 인형을 가슴에 끼운 아이가 두 다리를 뻗고 벽에 기대앉았다. 나의 눈에는 아이가 토라져 울먹이는 것처럼 보였다. 다가가 어깨를 다독거려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