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서재 결혼 시키기
지은이 : 앤 패디먼
옮긴이 : 정영목
펴낸곳 : 지호
책은 《아메리칸 스칼러》 편집장을 지낸 칼럼니스트 앤 패디먼(Anne Fadiman)의 미국의회도서관 발행지 『시빌리제이션』에 연재되었던 ‘평범한 독자의 고백’ 칼럼을 모은 에세이다. 책의 원제는 라틴어 ‘Ex Libris'로 ‘장서표’라는 뜻이다. 장서표는 책 소유자의 이름이나 문장紋章을 넣어 책표지 안쪽에 붙이는 표식이다. 나는 그동안 장서표에 관한 책으로 인연 있는 우리나라 문인과 예술인 50명의 장서표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판화가 남궁산의 『인연을, 새기다』(오픈하우스, 2007), 세계 각국의 장서표 200개가 실린 중국 장서표 연구가 쯔안의 『책 도둑의 최후는 교수형뿐이라네』(알마, 2016)를 읽었다.
한국어판 표제 『서재 결혼 시키기』는 첫 장 「책의 결혼」에서 차용했을 것이다. 책벌레․애서가愛書家 앤 패디먼이 들려주는 열여덟 편의 ‘행복한 책읽기’에 관한 기발하고 자전적인 에세이는 자칭 활자중독자인 나에게 흥미진진하기 그지없었다. 글쟁이 부부는 아이를 하나 낳고 결혼생활 5년 만에 장서 합병을 했다. 겹치는 책은 50권쯤 되었다. 저자는 열한 살 때 아버지가 쓰신 『단어 벌레 윌리』를 읽었고, 오빠와 가장 멋진 긴 단어를 찾는 경쟁을 펼쳤다. 네 명의 가족은 일요일 오후만 되면 퀴즈쇼 ‘G. E. 칼리지 볼’을 보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모였다.
서가의 자투리에 해당하는 부분은 나머지 장서와 관계없는 주제들을 가진 이상한 책들이 몇 권 모여 있게 마련이다. 패디먼의 자투리 책꽂이에는 극지방 탐험에 대한 64권의 책이 있다. 급진적인 변호사 윌리엄 쿤슬러는 50년 넘게 소네트를 써왔다. 여든여덟의 아버지는 80년 이상 잠복해있던 수두로 망막 괴사 진단을 받아, 시력검사표 맨 윗줄의 큰 글자도 읽지 못하는 시력으로 떨어졌다. 한주에 60시간씩 편집자․비평가로 살아 온 아버지는 밀턴의 소네트 『실락원』을 떠올리며 불굴의 지적 호기심으로 녹음된 책을 이용하고 메모 없이 강연했다. 투자분석가 클라크는 책의 장정이 바래는 것을 막기 위해 해가 질 때까지 블라인드를 올리지 못하게 했다. 그는 아끼는 책은 두 권을 사서, 한 권은 책장에 고이 보관했다.
서적광의 가치 등급 체계에서 문인간의 접촉을 보여주는 거룩한 유물(헌사)은 다른 모든 요인들을 덮어버린다. 바이런은 전통적으로 저자만이 글을 적을 수 있는 속표지를 피해 면지에 헌사를 썼다. 현장 독서는 책이 묘사하는 바로 그 장소에서 그 책을 읽는 것이다. 독서광들에게 현장 독서가 훨씬 더 자극적인 이유는 마음의 눈이 문자로 모든 만족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녀평등을 위해 우리 언어를 바꾸는 데는 대가가 따른다. 언어와 관련한 저자의 페미니스트적 자아는 동등한 대접을 받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에서 태어났다.
패디먼 가족은 모두 교열 강박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었다. 레스토랑의 메뉴판에서, 컴퓨터 소프트웨어 매뉴얼에서, 지역신문의 오류를,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의 여백에 교정을 보는 가족들이다. 30년이나 된 저자의 낡은 펜은 잉크를 채우려면 펜촉을 잉크에 담근 다음 투명한 플라스틱 흡입막대를 눌러야했다. 책에서 요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저자가 자주 나타내는 반응은 냉장고로 달려가고픈 충동이다. 나는 천승세의 단편 「폭염」을 읽으면서 시원한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소도시의 모텔에서 홀로 지낼 때 전화번호부가 위안이 되었고, 오래 전 두 번 이상 읽지 않은 유일한 문서는 룸메이트의 1974년형 도요타 코골라 안내서였고, 잘못 배달된 노스스트롬의 카탈로그를 꼼꼼하게 읽었다. 부모의 책을 합치면 7천권 쯤 되었다. 이사를 할 때마다 목수가 와서 4백미터 길이의 책꽂이를 새로 짰다. 낭독을 하게 되면 건너뛸 수도 없고, 대충 훑어볼 수도 없고, 읽는 속도를 높일 수도 없다. 호메로스의 시는 천천히 전개되어 나가는데 기원전 8세기 이오니아인들에게 맞추어진 속도였다.
네 번이나 영국 총리를 지낸 자유당 원로 W. E. 글래드스턴의 『책과 책의 보관에 대하여』는 29쪽짜리 양장본으로 1898년 5월 5백부 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가격 8달러는 쪽수 당 18센트였다. 작은 도시 헤이스팅스-온-허드슨의 허드슨강의 가파른 내리막 비탈에 자리잡은 풍파에 시달린 낡은 책방의 헌책은 300,000권이었다. 리버턴 책방에서 남편은 선물로 9킬로그램의 헌책을 선물했다.
옮긴이는 후기에서 말했다. “그저 책을 좋아하던 부모의 영향으로 책을 좋아하며 성장한 한 여자가 책을 매개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친구들을 사귀고, 또 자식 둘을 낳아 책을 함께 읽으며 키워 나가는 이야기‘(222쪽)라고.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처음 읽는 식물의 세계사 (0) | 2023.03.16 |
---|---|
컬러의 시간 (0) | 2023.03.15 |
에코의 초상 (2) | 2023.03.10 |
다독임 (1) | 2023.03.09 |
나의 일본미술 순례 1 (0) | 2023.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