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컬러의 시간
지은이 : 제임스 폭스
옮긴이 : 강경이
펴낸곳 : 윌북
가시광선은 전자기스펙트럼의 0.0035%를 차지하지만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색은 이곳에서 나온다. BBC 예술 다큐멘터리를 진행하는 미술사학자 제임스 폭스(James Fox, 1982- )가 8년 넘은 조사와 연구로 집필한 책은 색의 문화사였다. 『컬러의 시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일곱 가지 기본색(검정, 빨강, 노랑, 파랑, 하양, 보라, 초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세상의 이쪽에서 저쪽까지, 예술․문학․철학․과학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색이야기를 풀어냈다.
책장을 열면 마법의 색채를 풀어내는 53점의 그림과 사진, 그리고 본문 삽화 15점이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서론은 페르시아 문학의 걸작 『일곱 개의 초상Haft Peykar』으로 시작되었다. 12세기말 니자미 간자미가 쓴 작품은 서기 420-438년 사산제국을 통치한 바흐람5세에게 영감을 얻었다. 여기서 색을 장식과는 거리가 먼, 세상의 축소판으로 읽었다.
1장. 「검정-어둠 밖으로」는 검정이 어둠처럼 빛의 부재가 아니라, 빛의 ‘구멍’임을 보여준다. 검정을 ‘보려면’ 검정을 둘러싼 빛이나 앞서 온 빛을 주시해야 한다. 검정은 빛으로 만들어진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검정은 신비로운 힘과 생명의 색이었다. 현대인들에게 검정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재앙을 수식하는 ‘탁월한’ 형용사가 되었다. ‘검은 목요일’(1929년 10월 24일)과 ‘검은 화요일’(1929년 10월 29일)은 월가 대폭락과 대공황의 시작을 가리켰다. 셋슈 도요의 〈파묵산수도〉(1495)
2장. 「빨강-인류의 창조」는 프랑스 남동부 아르데슈 계곡 쇼베동굴 벽화는 대부분 숯으로 그린 동물그림과 400개가 넘는 손스텐실․손자국․손바닥 자국은 붉은 안료로 그려진 빨간색이었다. 손그림은 프랑스와 스페인뿐만 아니라 인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호주, 파타고니아의 선사동굴 수십 군데에 남아있다. 빨강과 피, 생식력을 연결하는 상징은 인류 최초의 상징이었을 지 모른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1845).
3장. 「노랑-우상의 황혼」은 2003년 10월, 덴마크 태생의 아이슬란드 예술가 올라푸르 엘리아손은 3년 전 개관한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터빈홀에 설치미술을 장식했다. 태양을 589나노미터의 파장으로 노란빛만 내뿜는 저압 나트륨 램프를 200개 설치하여 빛을 쏘았다.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의 〈레굴루스〉.
4장. 「파랑-수평선 너머」는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에서 울트라마린은 품질에 따라 1온스(약 28그램당)당 1-5플로린 금화(1 플로린은 3.5그램이 넘는 금을 함유)에 팔렸다. 가장 고운 울트라마린은 시장에서 다른 안료보다 최대 100배까지 가격이 비쌌다. 1968년 아폴로11호가 달에서 잡은 38만㎞ 떨어진 지구사진 〈지구돋이-달의 지평선 위로 지구가 떠오르는 모습〉은 ‘푸른 행성’이었다. 파란 눈동자는 파란 색소가 손톱만큼도 없다. 빛의 산란효과로 만들어지는 시각적 환영이다.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바쿠스와 아리아드네〉(1523).
5장. 「하양-유독한 순수」는 카라라대리석은 살아있는 피부 조직의 부드럽고 깊은 빛을 발산한다. 반투명성의 대리석은 유기물질처럼 빛을 표면에서 반사되지 않고 종종 몇 ㎝까지 뚫고 들어간 다음 캘사이트 결정에 부딪혀 다양한 방향으로 튕겨졌다. 계몽주의 시대이후 서양 사상가들은 미학적․과학적․사회적․인종적 의미를 채워넣어 하양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변종시켰다. 요한 요하임 빙켈만의 『회화와 조각에서 그리스 작품의 모방에 대한 생각』.
6장. 「보라-합성 무지개」는 티리언 퍼플은 기원전 5세기부터 시리아-페니키아 해안에서 갑각류(쇠고둥과 뿔고둥)로 만들었다. 염료 단 1그램을 만드는데 갑각류 9000-1만 마리가 필요했다.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보라는 워낙 화려하고 귀히 여겨져서 이를 중심으로 문명 전체가 지어졌다. 헨리 퍼킨은 1856년 아닐린으로 최초의 염색견본 보라를 만드는데 성공했고, 특허를 따냈다. M. P. 실의 『보랏빛 구름』.
7장. 「초록-실낙원」은 광합성의 핵심으로 세상에서 가장 풍부한 색소가 들어있다. 엽록소는 지구의 얼지 않은 땅 85%만이 아니라 물의 많은 부분을 물들였다. 녹색은 우리 시대의 키워드였다. 윤리적 식사, 유기농산물, 재활용, 재생에너지, 오염, 산림벌채, 기후변화, 야생동물 보호, 지속가능 발전에 대한 태도와 행동에 연결되었고, 세계 모든 이가 이러한 녹색의 은유를 이해한다. 데이비드 내시의 〈물푸레나무 둥근 지붕〉(1981).
『컬러의 시간』은 시대와 장소, 사람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달라지는 색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현재 세계는 4만개 이상의 염료와 안료가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매주마다 새로운 색상들이 새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색의 세계가 확장되기보다는 색을 인지하는 우리의 세계가 확장된 것이다. 책은 색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우리가 만드는 상징들과 그에 대한 관심사를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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