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나의 일본미술 순례 1
지은이 : 서경식
펴낸곳 : 연립서가
『나의 서양미술 순례』(창비, 1992), 『나의 조선미술 순례』(반비, 2014)에 이어 , 『나의 일본미술 순례 1』(연립서가, 2022)을 잡았다.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 서경식은 근대 일본의 질곡아래 보편적인 미의 가치를 추구하다 요절한 7인의 이단자를 소개했다. 여섯 명의 화가와 한 명의 조각가가 살다 간 시대배경은 1920년대부터 1945년까지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시기까지 였다. 다이쇼大正(1912-1926)는 제1차와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의 짧은 시기로 자유로웠던 한순간이었다.
서른일곱 살에 세상을 떠난 나카무라 쓰네中村彝(1887-1924)의 대표작 〈두개골을 든 자화상〉은 죽기 바로 한 해전의 작품이었다. 오카야마岡山 현 구라시키倉敷 시의 오하라大原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을 저자는 중학2년 수학여행 코스에서 처음 만났다. 다섯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화가는 스무살 무렵 가족을 모두 잃고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화가 또한 결핵 진단을 받고 육군유년학교에서 퇴학당한 후 그림만이 그의 삶의 증거가 되었다.
사에키 유조佐伯祐三(1898-1928)의 대표작 〈러시아 소녀〉는 짧았던 화가의 30년 생애 중 마지막 시기에 그린 작품이었다. 러시아 혁명 후 어머니와 둘이서 조국을 도망쳐 나온 모델은 1928년 3월 유조를 찾아왔다. 저자는 1978년 교토국립근대미술관의 《사후 50주년 기념 사에키 유조》 전시에서 작품을 만났다. 1924년 파리에 도착한 사에키는 작품 〈나부〉를 들고 블라맹크를 찾았다가 아카데미에 찌든 작품이라는 모멸적인 핀잔을 들었다. 그 충격은 사에키의 작품 성향에 일대 혁신을 불러왔다. ‘블라맹크 사건’ 이후 4년여의 짧은 인생, 사에키 유조는 ‘요절한 천재’의 전형이었다.
세키네 쇼지関根正二(1899-1919)의 〈신앙의 죽음〉은 저자가 중학 수학여행에서 방문한 오하라미술관에서 처음 만났다. 세키네가 작품을 완성하고 《제5회 이과전》에 출품하여 신인상에 해당하는 ‘조규상樗牛賞’을 받았을 때가 불과 열아홉 살이었다. 세키네는 상을 받고 이듬해 만 20년2개월이라는 만 스무살 나이에 폐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화가는 정식 미술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나 자기스타일을 모색하며 예술적 경지를 개척했다.
아이미쓰靉光(1907-1946)의 본명은 이시무라 니치로石村日郞로 대표작은 〈눈이 있는 풍경〉이다. 작품은 일본 최초의 국립미술관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저자는 1989년 《쇼와昭和 시대의 미술》 전시에서 작품을 처음 만났다. 아이미쓰는 다른 화가가 군부에 협력해 전쟁기념화를 그렸을 때 압력에 굴하지 않았다. 화가의 이른 죽음은 전쟁과 공존하는 삶이 불가능했던 그가 결국 자국 군대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한 셈이다.
오기와라 로쿠잔의 이름은 오기와라 모리에荻原守衛(1879-1910)로 ‘로쿠잔碌山’은 호였다. 대표작 〈갱부〉는 1907년 파리 체재 시에 만든 작품이다. 조각가가 태어난 조넨산常念岳 동쪽 기슭에 1958년 로쿠잔미술관이 개관되었고, 작품은 아즈미노安曇野 깊은 산골에 남았다. 저자는 1960년대 후반 고등학생 시절 미술관을 방문했다. 극도의 가난한 산촌을 떠나 병든 몸으로 힘겹게 고학하면서 파리에서 〈생각하는 사람〉과 조우한 로쿠잔은 회화를 버리고 조각으로 전향했다. 그는 1910년 4월 엄청난 각혈 끝에 만 30세5개월이라는 젊은 나이로 숨이 멎었다.
노다 히데오野田英夫(1908-1939)는 미국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으로 대표작은 〈노지리 호숫가의 꽃〉이다. 작품은 나가노현 우에다上田 교외 ‘시오다다이라塩田平’의 험준한 산을 뒤로 한 불편한 산골의 작은 미술관〈시나노 데생관〉에 있다. 히데오와 아내 루스는 미국 공산당원으로 지하활동에 관계했다. 규슈 구마모토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이었던 화가는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벌였던 기구한 운명에 처해 반전평화운동에 투신했다. 화가는 뇌종양 수술후 회복을 못하고 30세5개월의 짧은 삶을 마쳤다.
마쓰모토 슌스케松本竣介(1912-1948)의 〈의사당이 있는 풍경〉은 모리오카盛岡 현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화가는 동료 화가 대다수가 전쟁을 찬미하고 전의를 고양하는 작품을 그렸던 시대에 아이미쓰와 함께 시류에 저항하여 시종일관 예술가로서의 양심을 지켜냈다. 청력을 상실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 책과 화집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경지를 개척했다. 지병인 기관지 천식이 악화되어 36년2개월의 삶 끝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지은이가 편애하는 7인의 화가・조각가들은 일본 미술계의 이단자들이었다. 저자는 100년 가까운 세월에 풍화된 어두침침하고 죽음의 냄새가 풍기는 대표작을 앞세워 그들의 삶과 예술을 조명했다. 미술가들은 ‘일본 근대미술’이라는 어려운 문제와 온 몸으로 격투하다 젊은 나이로 죽음에 이르렀다. 과감하게 시대를 앞서나간 예술적 행보, 그들은 모두 요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