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인듀어런스

대빈창 2023. 5. 16. 07:00

 

책이름 : 인듀어런스

지은이 : 캐롤라인 알렉산더

찍은이 : 프랭크 헐리

옮긴이 : 김세중

펴낸곳 : 뜨인돌

 

영국의 극지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1874-1922)경卿은 세계 최초로 남극대륙 횡단에 나섰다. 그의 남극점 정복, 첫 번째 도전은 1901년 8월 로버트 스콧이 이끄는 ‘디스커버리호’의 일원으로 왕복 2,000㎞에 넘는 엄청난 도전을 감행했으나 절망적인 상황으로 후퇴했다. 두 번째 도전은 1907년 8월 ‘님로드호’로 떠나 남극점을 150㎞ 앞둔 남위 88도23분 지점에서 더 이상의 전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로알 아문센(1872-1928)에게 최초 남극점 정복을 빼앗겼다.

1914년 12월, 남극권의 관문 조지아섬 포경기지를 출발했다. 대원 선발에서 친구는 합격되고, 자기는 떨어지자 뱃속에 숨어들어 주방보조로 일하게 된 블랙보로까지 28명의 탐사 대원이었다. 탐험선 인듀어런스(Endurance, 인내)호는 1,600㎞ 이상을 항해했으나 남극대륙을 150㎞ 앞두고, 남극해를 떠다니는 부빙에 갇혔다. 대원들의 일기와 호주 출신 탐험대 사진사 프랭크 헐리의 사진은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대원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역경에 맞서 투쟁을. 

탐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생존드라마였다. 얼음에 갇힌 인듀어런스호는 웨들해의 해류에 밀려 부빙군群과 함께 표류했다. 황제 펭권 8마리가 배를 향해 조용히 다가와 머리를 뒤로 젖히더니 기분 나쁜 소리로 울부짖었다. 마치 펭귄들이 장송곡을 부르는 것 같았다. 인듀어런스호가 남극해에 가라앉고 있었다. 대원들은 악천후를 뚫고 행군하며 캠프를 설치했다. 식량이 부족해지자 썰매개 27마리를 총살시켰다. 탐험선에 딸려 있던 작은 보트 세 대 ‘제임스 커드호’, ‘더들리 더커호’, ‘스탠콤 윌스호’를 남극해에 띄웠다. 대원들은 지금껏 15개월 동안 얼음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은 이제 시작이었다.

대원들은 부빙 위의 허술한 캠프에서 펭귄․물개를 사냥해 허기를 채우며 버텼으나 얼음이 가득한 바다에 갇혔다. 작은 요트로 남극 겨울바다에서 7일을 공포에 떨며 표류했다. 구명선은 얼음이 두텁게 얼어붙었고, 차가운 파도에 얻어맞은 대원들은 냉동생선 몰골이 되어갔다. 그들은 497일 만에 천신만고로 남극 무인도 엘리펀드섬에 상륙했다. 사우스 조지아섬까지는 무려 1,000㎞, 지금까지 도달한 거리의 10배가 넘었다. 그곳을 6m 길이의 갑판도 없는 요트로, 지구에서 가장 험난한 바다 위로, 그것도 남극의 겨울에 도달해야만 했다. 그 바다에는 시속 100㎞의 바람이 불고, 20m 높이의 파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섀클턴은 자신과 선장 위슬리, 크린, 맥니쉬, 맥카티, 빈센트의 선발대로 ‘제임스 커드호’로 길을 나섰다. 온갖 고난을 헤쳐나가는 그들을 필설로 형용하기가 불가능했다. 하늘의 도움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어찌되었든 1280㎞의 드레이크 해협을 뚫고 조지아섬의 스트롬니스 포경기지 반대쪽 해안에 닿았다. 이제 그들 앞에 누구도 밟아본 적 없는 3000m의 얼음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니스트경과 크린, 위슬리는 도끼 한 자루 몇 m의 로프를 들고 산을 타기 시작했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크레바스를 피해, 그들은 가던 길을 되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5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남쪽 계곡을 목표로 봉우리들 사이의 협곡에 올랐으나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모두 천길 얼음절벽이 그들을 기다렸다. 오후 내내 허수고만 한 것이다. 하지만 어니스트경에게 좌절은 없었다. 한밤중 마지막 네 번째 협곡에 오른 그들은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로프로 만든 똬리를 눈썰매삼아 어둠 속에 몸을 던졌다. 몇 분 만에 운 좋게 500m의 얼음비탈을 내려왔다.

포경기지 여인과 어린이들이 그들을 보고 놀라 도망쳤다. 고래기름 연기로 얼굴은 새까맣게 검댕이졌고, 소금기에 찌든 머리카락은 잔뜩 헝클어져 어깨에 닿았다. 옷이 아니라 누더기였다. 그들은 스트롬니스 포경기지에서 2년만에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할 수 있었다. 어니스트경은 ‘삼손호’로 킹 하콘만의 세 사람 맥니쉬, 맥카티, 빈센트를 먼저 구출했다. 엘리펀드섬의 22명 대원을 구출하기 위해 포경선 ‘서던 스카이호’, 우루과이 작은 탐사선 ‘인스티투토 드 페스카 1호’, 영국협회가 지원한 푼나 아레나스 주 ‘엠마호’ 모두 세 번의 실패로 몇 달이 흘러갔다. 탐험대장 어니스트경은 머리가 온통 허옇게 세었다.

섀클턴은 칠레 정부가 빌려 준 작은 증기 예인선 ‘엘토호’로 직접 구출에 나섰다. 단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인듀어런스호 대원들은 생지옥에서 일상으로 돌아왔다. 책의 부제는 ‘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이었다. 섀클턴의 리더십은 평범한 사람이라도 상황이 닥치면 영웅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에서 우러나왔다. 5년후 섀클턴은 볼품없는 물개잡이 배 ‘퀘스트호’로 다시 남극탐험에 나섰다. 사우스조지아섬에서 갑작스런 심장발작으로 47세에 숨을 거두었다. 탐험대장의 아내 에밀리는 비좁은 영국의 공동묘지보다 자유로운 남편의 영혼을 조지아섬에 묻어달라고 했다. 어니스트경은 그를 가장 잘 이해했던 조지아섬 노르웨이 선원들 사이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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