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어제를 향해 걷다

대빈창 2023. 5. 12. 07:00

 

책이름 : 어제를 향해 걷다

지은이 : 야마오 산세이

옮긴이 : 최성현

펴낸곳 : 상추쌈

 

일본의 시인․생태운동가 야마오 산세이(山尾 三省, 1938-2001)를 처음 만난 책은 『여기에 사는 즐거움』(도솔, 2002) 이다. 내가 잡은 책은 3쇄로 2004년 8월에 출간되었다. 옮긴이 이반은 생태주의자 최성현의 필명이었다. 그 시절, 나는 막 최성현의 삶과 글에 빠져들고 있었다. 야마오 산세이의 시집과 산문집은 모두 서른 권이 넘는다고 한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어제를 향해 걷다』(조화로운삶, 2006), 『더 바랄게 없는 삶』(달팽이출판, 2003), 『애니미즘이라는 희망』(달팽이출판, 2012)이 출간되었다.

2010년대 초반으로 기억된다. 『더 바랄게 없는 삶』은 일찌감치 품절이었다. 나는 머뭇거리다 『어제를 향해 걷다』가 절판되면서 얼마나 아쉬웠던가.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역시 출판사 《상추쌈》은 믿음직스러웠다. 개정증보판 산문선집 『어제를 향해 걷다』와 시선집 『나는 숲으로 물러난다』를 같이 펴냈다. 다시 후회할 수는 없었다. 시선집은 부리나케 인터넷 서적을 통해 손에 넣었다. 산문선집은 군립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했고, 나는 뿌듯한 심정으로 재생종이로 만든 책갈피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서문 「새롭게 펴내는 《어제를 향해 걷다》에 부쳐」는 야마오 하루미(山尾 春美, 야마오 산세이의 아내)가 2022년 6월 22일에 썼다. 나는 『여기에 사는 즐거움』의 표지사진의 나무와 풀이 우거진 산골집 문턱에 걸터앉은 부부를 떠올렸다. 슬리퍼를 신고 무릎을 세워 앉은 시인과 널판지문에 기대놓은 삽 한자루 사이에 앉은 단발머리의 안경 쓴 여인을 떠올렸다. 작가 정여울은 추천사에서 “어떻게든 언제나 손닿는 곳에 두고 싶은 책”이라고 했다. 나는 20여 년 전의 아쉬움을 이 책으로 보상받은 기쁨에 책을 잡는 내내 즐거웠다.

옮긴이는 “이 책은 예순한 가지 본래 고향 이야기‘라고 했지만 내가 손가락을 꼽으며 센 것은 5부에 나누어 실린 62편의 글이었다. 야마오 산세이는 1977년 태어나고 자란 도쿄를 떠나, 7천2백년을 살아 온 조몬삼나무가 있는 야쿠섬으로 이주했다. 그는 야쿠시마의 오래되고 버려진 마을에서 아내와 함께 자녀 아홉을 키우고, 집짐승 산양과 닭, 돼지를 돌보며 산간 밭을 일구고, 어제를 향해 걸었다. ‘시간이 한쪽으로만 흐르고 있다는 것은 이 시대의 큰 착각이자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미래와 마찬가지로 과거를 향해서도 흐르고 있는, 항상 지금이라고 하는 이 순간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86-87쪽)

5부. ‘아내가 떠나다’는 지주막하출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내 준코에 대한 추모글이었다. 1년 동안 아내와 함께 떠난 인도와 네팔의 성지순례동안 읽었던 《티베트 사자의 서》를 떠올렸고, 아내가 떠나고 열흘이 되어서야 그는 간신히 뒷간 치는 일로부터 다시 시작했다. 화장하여 납골함 상자에 담긴 아내의 유골의 맛을 보기도 했다. 아내의 제단에 돈나무꽃을 올리고, 아주 조금 바다가 보이는 뒷산에 아내 무덤을 만들고, 아내 생일 다음날 휴일을 잡아 마을사람들의 도움으로 납골식을 가졌다. 그렇다면 서문을 쓴 아내와 시인은 죽기 전에 재혼을 했다는 것인가, 나는 잠깐 혼란스러웠다.

야마오 산세이에게 ‘본래 고향’은 산이 있고 강이 있고 바다가 있고, 인간이 조화롭게 사는 세상이었다. 자연생활이란 자연을 주인으로 하고 인간을 종으로 하는 생활을 말했다. 책은 야마오 산세이가 야쿠섬에 이주한 이후, 8년 간의 일상과 깨달음이 담긴 기록이었다. 그의 산문의 힘은 병든 현대 문명의 환부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대개의 현대인은 땅을 밟고 일하는 것을 잊었다. 오직 편한 쪽으로만 몸을 두고 살며 실은 불안과 허무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봐야 한다.”(352쪽) 나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섬 생활이 20년이 다 되어온다. 삶을 돌아보고 있는가.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듀어런스  (0) 2023.05.16
오늘 아침 단어  (0) 2023.05.15
눈감지 마라  (0) 2023.05.11
예수라는 사나이  (1) 2023.05.09
인류본사  (0) 2023.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