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눈감지 마라
지은이 : 이기호
펴낸곳 : 마음산책
나에게 2000년대 한국작가는 박민규와 이기호였다. 박민규의 『지구영웅전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카스테라』, 『핑퐁』,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Double A․B』와 이기호의 『최순덕 성령 충만기』, 『갈팡질팡 하다가 이럴 줄 알았다』, 『사과는 잘해요』, 『김박사는 누구인가!』, 『차남들의 세계사』,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세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가 사이좋게 어깨를 맞대었다.
박민규의 두 권짜리 소설집 『Double』이 나온 지가 2010년이었다. 한국 문단이 표절바람에 휘청거릴 때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구설수에 올랐다. 이후 소설가는 단행본을 내지 않고 두문불출했다. 내 방에 책이 비집고 들어설 공간이 없어져서야, 나의 발길은 도서관으로 향했다. 소설가 이기호에 대한 나의 애착은 집요했다.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누가 봐도 연애소설』이 연이어 내 손에 들렸다.
『눈감지 마라』는 49편의 짧은 연작소설집이다. 2017년 1월부터 2021년 크리스마스이브까지, 꼬박 5년 동안 한 일간지에 연재한 소설을 단행본으로 묶었다. 소설을 끌고 가는 주인공은 박정용과 전진만 두 명의 지방청년들이다. 그들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남은 것은 정용은 8백 만원, 진만은 12백 만원의 빚뿐이었다. 첫 꼭지 「어둠 뒤를 조심하라」는 주위에 논과 밭, 산 밖에 없는 산골짝이 지방사립대 마지막 학기의 나온 정용과 진만은 학교 정문 앞 편의점 파라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시외버스를 기다렸다. 전날부터 내린 폭설로 시외버스는 끊겼고, 광역시 촛불집회로 향한 발길도 끊겼다. 그들은 준비한 양초를 태우며 컵라면, 삼각김밥으로 저녁을 때우고, 소주 네 병을 나눠 마셨다. 술이 취해 기숙사로 돌아오면서 그들은 사람을 볼 수 없었고, 느닷없이 만난 멧돼지 가족에 혼비박산 줄행랑을 놓았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짜증을 내며 한 말 ‘에휴, 더러운 놈의 알바 인생!’에서 그들은 벗어날 수 없었다.
출장 뷔페 전문점, 명절연휴 고속도로 휴게소, 택배 상하차, 편의점, 건축현장, 대형 프랜차이즈 삼계탕집 설거지, 생활폐기물 철거 아르바이트······. 심지어 치즈와 유가공제품 판매 유통회사 최종면접을 통과했으나 입사원칙에 따라 3개월 영업판촉 일에 나섰다가 한 달 만에 그만 두었다. 그렇다고 이들이 가족에게 손을 내밀 형편은 더더욱 아니었다. 정용의 아버지는 요실금 중증으로 욕실 앞 문턱에 이불을 깔 수밖에 없었다. 진만의 치매걸린 할아버지와 이혼한 아버지가 다 낡은 연립주택에 살며, 두 분이 저녁을 먹는 풍경은 쓸쓸했다.
“너 왜 가난한 사람들이 화를 더 많이 내는 줄 알아? 왜 가난한 사람들이 울컥울컥 화내다가 사고치는 줄 아냐구!”(112쪽)
“피곤해서 그런 거야, 몸이 피곤해서······. 몸이 피곤하면 그냥 화가 나는 거라구”(112-113쪽)
가난, 피로, 수모, 냉소로 점철된, 그들의 삶에서 의지했던 둘을 갈라놓은 것도 돈이었다. 보증금 없는 30만원 원룸에 살던 그들에게 집주인은 3백만원 보증금을 요구했다. 돈이 없는 진만에게 정용은 마음이 점차 뾰족해져갔다. “무슨 거지새끼도 아니고” 상처받은 진만은 가출했고, 프랜차이즈 치킨집 숙식제공 알바를 뛰다가 교통사고로 죽는다. 진만은 오토바이 면허증도 없었다. 월급의 반을 가불한 그는 주인의 배달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마지막 꼭지 「말할 사람」은 시골에서 올라왔으나 기거할 곳이 마땅치 않은 친구의 여자 친구 남동생 이민재를 정용은 받아들였다. 둘의 생활이 서먹함을 벗어나고, 이민재는 몸도 못가눌 정도로 술이 잔뜩 취해 들어왔다. 취기어린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가난한 아빠들이 가난한 애들을 키우고, 가난해서 술 취한 아빠들이 다시 가난해서 술 취한 아이들을 만들고······.”(315쪽)
“말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형······. 자꾸 술하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3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