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심장보다 높이
지은이 : 신철규
펴낸곳 : 창비
내가 시집을 그런대로 즐겨 잡는 것은 시인친구 함민복의 영향 때문인지 몰랐다. 나의 무딘 詩적 감수성은 시집에서 한두 편의 가슴을 두드리는 시편을 만나면 다행이었다. 대략 60여 편이 담긴 시집에서 만난 감동적인 시 한편은 오래도록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었다. 시인 신철규는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유빙」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문학동네, 2017년)의 표제시가 나의 가슴을 두드렸다. 타워팰리스 인근 빈민가에 사는 아이가 친구 생일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슬픔을 읊은 시였다. 나는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을 기다렸다. 5년 만에 나온 시집의 표제시는 시인들이 뽑은 ‘2018 오늘의 시’였다. 시인 김승희는 추천사에서 말했다. “어떤 시는 한번 읽으면 그 시를 읽지 않은 시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한다.······. 이 시를 읽은 후 욕실 속의 욕조를 볼 때마다 캄캄한 정전이, 물의 재난이, 침몰의 공포가, 스틱스라는 저승의 강이, 헐떡이는 심장이, 몸의 위태로움이, 욕실 문을 긁는 고양이의 발이 느껴진다.”
그렇다. 詩는 2014년 4월 16일. 그날 세월호의 슬픔과 고통을 환기시키고 있었다. 시인의 시편들은 ‘고통으로 가득 찬 현실을 직시하며 폭력의 역사와 동시대의 눈물을 시에 담아낸다.’ 시집을 여는 첫 시 「세화」(10-11쪽)의 9연은,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폭도가 된다
‘세화’는 제주도의 한 해변이다. 제주4․3항쟁과 시인의 고향이 경남 거창(한국전쟁 거창양민학살)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동학농민전쟁, 3․1운동, 4․19의거, 80년 광주항쟁, 87년 국민대항쟁, 2016-17년 촛불집회.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어김없이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은 빨갱이에 사주 받은 폭도(한국전쟁 이후)였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43편이 실렸고, 해설은 문학평론가 남승원의 「상처와 고통의 연대기」였다. 마지막은 「얇은 비닐 막을 뚫고 가는 무딘 손가락처럼」(48-49쪽)의 3․4․5연이다.
일본의 우키요에에 나오는 우산은 평평하다 / 우산은 언제부터 방추형으로 만들어졌을까 / 공기의 저항을 최대한으로 줄이면서 / 최소한의 비를 맞기 위해 / 아래로 굴곡진 우산 위로 빗방울이 흘러내린다 / 하나하나 미끄럼을 탄다 // 새 한 마리가 빗속을 뚫고 날아간다 / 투두둑 / 얇은 비닐 막을 뚫고 가는 무딘 손가락처럼 // 아주 연약한 거미줄에도 물방울은 맺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