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강화 돈대

대빈창 2023. 5. 23. 07:00

 

책이름 : 강화돈대

지은이 : 이상엽

펴낸곳 : 교유서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상엽(56)을 나의 뇌리에 각인시킨 책은 MB정권의 막돼먹은 4대강 파괴의 현장을 발로 뛰어 담은 『흐르는 강물처럼』(레디앙, 2011)에 실린 사진들이었다. 『강화 돈대』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든 생각은, 사진작가가 이렇게 글까지 잘 쓰다니하는 부러움이었다. 나는 그동안 글 잘 쓰는 사진작가로 이지누(1959-2022)를 알고 있었지만 이상엽도 그에 못지않았다. 더군다나 이상엽은 전 진보신당 정책위부의장이었다. 나는 일단 진보정당에 몸담거나 담았던 이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강화 돈대』는 사진작가가 2015년부터 강화도를 빙 둘러싼 돈대를 찾아 사진으로 기록한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었다. 다크 투어리즘은 인류의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이나 재난 또는 재해가 일어났던 장소를 돌아보는 여행을 가리킨다. 강화江華 돈대墩臺는 조선 숙종 때 52개소가 설치되었다. 1679년에 이르러 강화도 섬 전체를 요새화한 5鎭․7保․52墩臺가 완성되었다. 영조 때 작성鵲城 돈대를 건설했고, 고종 때 용두龍頭 돈대가 추가되어 총 54돈대가 되었다.

책은 4부로 구성되었다. 1부는 17C 초반 격변하는 동아시아의 정세에서 강화도에 돈대가 세워지는 배경과 기원을 추적했다. 영고탑회귀설寧古塔回歸設, 북벌론北伐論, 정鄭도령의 침입, 청나라 ‘오삼계와 삼번의 난’ 등. 2부는 조선 권력의 당파 투쟁에서 강화도 돈대가 설계되는 과정을. 3부는 19C말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탈과 그를 막으려는 해안 방어시설 돈대를. 4부는 해방과 한국전쟁, 군사 쿠데타로 이어지면서 돈대가 역사문화 유적으로 인식되는 현실을 살펴보았다.

강화역사관의 갑곶甲串 돈대는 강화도 54돈대의 첫 출발지이다. 이곳은 당시 사용하던 화포 불랑기佛狼機와 소포 하나씩 놓인 10평 남짓한 공간이다. 불랑기는 서양식 화포로 유럽의 프랑크frank에서 유래되었다. 버려져있던 건평乾坪 돈대를 수습, 복원하면서 포좌 아래에서 불랑기가 발굴되었다. 포에 1680년 2월 ‘삼도수군통제사 전동홀 등이 강도 돈대에서 사용할 불랑기 115문을 만들어 진상하니 무게는 100근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돈대를 축성하고 1년 후 포좌마다 불랑기포가 장착되었다.

초루 돈대는 다른 돈대와 달리 해안으로 튀어나온 곳이 아닌 낮은 산 정상에 자리 잡았다. 출입구 문주석 왼쪽에 4행의 명문이 남았는데. 축조시기가 대부분의 돈대들과 달리 숙종46년(1720)에 지어졌다. 강화도 돈대가 처음 축조된 것은 숙종5년(1679)으로 총 48개의 돈대가 만들어졌다. 표지사진은 계룡鷄龍 돈대의 명문이 새겨진 면석이다. ‘강희일십팔년사월일경상도군위영康熙一十八年四月日慶尙道軍威營’으로 숙종5년(1679) 4월에 돈대를 축조하였다는 정확한 연도와 시공 주체를 밝혔다. 검암歛巖 돈대는 1690년에서 1696년 사이에 추가로 건설된 돈대였다. 양암陽巖 돈대는 영조 때 일찍이 폐쇄되어 용도가 사라졌다. 1707년 선두포언이 완공되어 선두평이 생기면서 바다가 멀어져버렸다. 다행히 미곶彌串 돈대는 원형이 보존되어 있고, 일부에 석모도 판석을 이용한 여장도 조금 남아있다.

승군 8900명은 단 80일 만에 여장을 제외한 48개의 돈대 축조작업을 마쳤다. 돈대는 평상시에 돈장 1명과 병사 3명이 15일 씩 교대로 근무했다. 돈대마다 3칸의 무기고와 2칸의 숙직실이 있었다. 이곳에서 4명이 먹고자며 경계근무를 섰다. 병사는 15일씩 근무를 서고 집으로 돌아가 일상에 종사했다. 매년 3개월 정도를 채우려면 1년에 6번을 근무했다. 강화도 돈대는 쌓은 지 200년도 되지 않아 프랑스 병인양요(1866년), 미국 신미양요(1871년), 일본 운요호 사건(1875년)의 외침에 힘없이 무너졌다. 우리는 전쟁과 학살이 자행된 아픈 역사를 간직한 돈대를 드러내지 못했고 은폐시켰다. 현재 54돈대 중에서 시나 군의 유적지 지정으로 보호받는 것은 14개이다. 그나마 전체 25%만이 관리를 받고 있는 형편이다.

『강화 돈대』의 부제는 ‘돌에 새겨진 변방의 역사’였다. 사진작가는 말했다. “변경은 흔히 외진 변두리를 일컫지만, 고정된 곳이 아니라 중심을 뒤흔드는 힘이 되고 아예 중심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변경을 주목해온 제 사진 작업이 강화도 옛 방어진지인 돈대를 주목한 것도 그런 역사의 복잡한 속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무대였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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