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대빈창 2023. 5. 24. 07:00

 

책이름 :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지은이 : 제임스 볼

옮긴이 : 김선영

펴낸곳 : 다산북스

 

섬을 떠나는 동생이 남겨준 열권의 책에서 네 번째로 손에 잡은 책이다. 도발적인 표제는 나의 독서욕을 강렬하게 자극했다. 막상 책갈피를 넘기는 손가락에 그리 힘이 들어가지 못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지리멸렬해지면서 흥미가 떨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2016년 미국 대선의 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당선과 영국 브렉시트(Brexit) 찬반 선거가 주主 내용으로 한물 간 시의성 때문일까.

거짓말(lie)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대어 말을 하거나 또는 그런 말을 가리킨다. 사실․진실을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꾸며낸 말이다. 개소리(bullshit)는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조리 없고 당치 않는 말이다. 진실이나 거짓 어는 쪽으로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허구의 담론이다. 제임스 볼(James Ball)은 ‘에드워드 스노든 폭로 사건’ 보도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영국의 젊은 기자다. 지난 2016년 영국 옥스퍼드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 truth)'을 꼽았다. 진실과 허위가 허물어진 시대 상황을 나타낸 신조어였다.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는 4부로 구성되었다. 1부는 가짜뉴스와 개소리의 핵심 행위자 가짜 미디어, 소셜 미디어, 뉴 미디어, 레거시 미디어, 정치인 그리고 뉴스 소비자를 살폈다. 2부는 2016년 가장 중요한 두 개의 선거, 영국 브렉시트(Brexit)와 트럼프가 백악관을 접수하는 경로를 훑었다. 3부는 개소리가 대중의 심리를 파고들어 믿음을 강화하는 과정을. 4부는 개소리에 맞선 행동이 무력했던 이유와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서술했다.

책의 부제는 ‘진실보다 강한 탈진실의 힘’이다. 지금 시대는 개소리가 난무하는 시대였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 말만 들으려해서 전문가의 말이나 실제 벌어진 사건보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더 신뢰한다. 개소리의 힘이다. 독자의 흥미를 자극한다면 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영국의 총리 보리스 존슨과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정치인과 성향이 다른 매체라도 그들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음을 마구 떠벌이는 개소리의 힘으로 보여주었다.

트럼프가 거짓말, 왜곡, 개소리,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을 늘어놓을수록 미디어와 상당수 대중은 허탈함에 빠져들었다. 2020년 7월 《워싱터포스트》에 의하면 트럼프가 2017년 1월 취임이후, 3년6개월 동안 2만 번의, 하루 평균 15번 넘게 허튼소리를 떠벌렸다. 트럼프가 한 시간 동안 쏟아내는 정치적 헛소리는 그의 경쟁자 대다수가 1년 동안 만들어내는 헛소리보다 많다. 트럼프는 자신이 이긴 선거가 조작됐다고 주장한 최초의 승자였다.

브렉시트를 결정지은 캠페인은 복잡하지 않았다. “우리는 EU에 매주 3억5000만 파운두를 보낸다. 이 돈으로 국민의료보험NHS를 지원하자.” 이 주장은 근본적으로 개소리였다. 도발적인 주장을 미끼로 던지는 탈퇴 진영의 전략은 캠페인 내내 이어졌다. “7600만 인구의 터키가 EU에 가입한다.”라는 단순한 문구가 쓰인 포스터가 힘을 발휘했다. EU에 가입하려면 35개 분야에서 가입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브렉시트 투표 당시 터키는 딱 한 분야만 요건을 충족했다. 대중은 자신의 신념을 확증해주는 정보를 믿고, 사실에 근거한 기사보다 자극적인 기사에 더 솔깃해진다.

겨울 어느날 아침, 첫배를 탄 동네 형이 병원에 가면서 읍내로 향하는 나의 차를 얻어 탔다. 그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나에게 뜬금없이 한마디를 던졌다. “문재인이 북한에 수천 가마의 쌀을 보냈데.” 나는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이 양반이 나를 뭘로 보는 것인가. 나는 대꾸했다. “요즘은 기자가 슬리퍼를 신은 것까지 아는 세상입니다. 수천 가마의 쌀을 배에 선적하려면 동해안 항구에 며칠을 배가 정박했을 텐데,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그런 뉴스는 없었어요.” 나는 못을 박았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 데요.” 분명 친구가 보낸 카톡이나 문자를 보고 나에게 건넨 말이었다.

문재인정부 시절이었다. 왈가닥 동네 형수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박장대소했다. 볼륨을 키운 손전화에서 대통령에 대한 막말과 욕설이 쏟아졌다. 분명 태극기 부대의 동영상일 것이다. 나는 밉살스러워 한마디 보탰다. “당신들이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추앙하는 박무언가 시대였다면 당신들은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졌을 것이다.” 그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볼륨을 줄이며 뒤로 물러났다. 독재정권 시절 찍소리도 못하던 그들이, 민주화에 고귀한 생명을 바친 열사들을 빨갱이로 매도하던 그들이, 무임승차한 민주화(?)시대를 만끽하며, 내 세상이라도 된다는 듯이 자유(!)를 구가하고 있었다.

과학저술자 벤 골드에이커Ben Goldacre는 말했다.  “개소리는 갈수록 파국으로 치닫는 미끄러운 비탈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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