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책은 도끼다

대빈창 2023. 6. 12. 07:00

 

책이름 : 책은 도끼다

지은이 : 박웅현

펴낸곳 : 북하우스

 

책이 출간된 지 12년 만에 펼쳤다. 나의 독서이력은 베스트셀러에 한발 비껴 서있었다. 도서관에 발길이 가지 않았다면 나의 생에서 인연이 닿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TV와는 담을 쌓고 사는 나에게도 귀에 익숙한 카피다. 『책은 도끼다』는 광고 카피라이터 박웅현이 쓴 책에 대한 글이었다.

표제는 1904년 1월 카프카가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의 한 글귀였다.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책은 경기창조학교의 〈책 들여다보기; I was moved by〉 인문학 강독회가 밑바탕이 되었다. 2011년 2월부터 6월까지 4개월 동안 삼주에 한 번 이루어진 7개의 강의로 구성되었다. 저자는 말했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권을 읽더라도 ‘깊게’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들, 감동받은 부분들에 밑줄을 긋고, 그 문장들을 다시 정리하는 자신만의 독법을 소개했다.

1강 ‘시작은 울림이다’은 판화가 이철수의 판화집 『산벚나무 꽃피었네』, 『이렇게 좋은 날』, 『마른풀의 노래』. 소설가의 최인훈의 「광장」. 아동문학가․교육자 故 이오덕이 엮은 어린이 시집 『나도 쓸모 있을 것』. 온 감각을 일깨우는 청각을 시각화하는 판화. 산문 곳곳에 운문처럼 배치한 문장의 충격.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받는 것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

2강 ‘김훈의 힘, 들여다보기’는 김훈의 『자전거 여행 1․2』, 『너는 어느 쪽이냐 묻는 말들에 대하여』, 『개』, 「화장」. 탐사취재를 통해 형용사나 부사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객관적인 사실을 불러내서 정서를 전달. 각성과 새로운 시선을 던져주는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힘.

3강 ‘알랭 드 보통의 사랑에 대한 통찰’은 알랭 드 보통의 『불안』, 『우리는 사랑일까』, 『동물원에 가기』,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내가 좋아하는 게 중요하지 않고, 저 사람이 좋아해줄까가 중요해지는 관점이 모두 상대로 돌아서는 것이 사랑. 책은 평소에 못 봤던 것들을 보게 해주는 존재. 결국 흥미를 잃는 것은 삶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일상적인 태도라는 의미. 예술지상주의자․탐미주의자에게 예술은 자연과 인생보다 월등하고 미학은 윤리보다 우선.

4강 ‘햇살의 철학, 지중해의 문학’은 김화영의 『행복의 충격』, 『바람을 담은 집』, 『시간의 파도로 지은 城』.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人 조르바』, 『천상의 두 나라』, 로버트 카플린의 『지중해 오디세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장 그르니에의 『섬』. R. M. 릴케의 『말테의 手記』. 지중해성 철학의 핵심은 ‘현재에 집중하라, 순간을 살아라’. 조르바는 지식인들처럼 옳고 그름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추함을 중심으로 하는, 판단의 축이 다른 사람. 감정, 신, 슬픔, 도덕, 종교, 가식, 미래, 신념 같은 것들이 중요하지 않았던 뫼르소.

5강 ‘결코 가볍지 않은 사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성과 사랑, 정치와 역사, 신학과 철학까지 아우르고 있는 한 편의 소설이 주는 감동의 무게. 연민, 즉 동정심은 타인의 불행을 함께 겪을 뿐 아니라 환희, 고통, 행복, 고민과 같은 다른 모든 감정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감정이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장 최고의 감정.

6강 ‘불안과 외로움에서 당신을 지켜주리니, 안나 카레니나’는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농노제 붕괴에서 러시아 혁명에 이르는 한 시대를 아우르는 사회소설. 보편적인 사람들의 숨겨진 본능과 감정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 단순히 오늘을 즐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집중하고 사는 것에 방점을 찍는 것이 실존. 소설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7강 ‘삶의 속도를 늦추고 바라보다’는 법정의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다』. 손철주의 『인생이 그림 같다』,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2』, 『그림 속에 노닐다』.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한형조의 『붓다의 치명적 농담』. 법정스님은 우리와 같은 시대를 지내면서 옛 사람들의 속도로 살아가신 분. 영어 단어 하나 들어가지 않지만 세련되고 기품이 있는 오주석․최순우의 글. 우리가 얼마만큼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예술이 달라진다. 확실이 지식은 바깥에서 들어오지만 지혜는 안에서 나오는 것.

책을 읽어나가다 옥의 티를 발견했다. 초판이 출간된 지 12년이 지났고, 초판 119쇄를 찍고 2판 11쇄를 잡은 나의 눈에 뜨이다니. 2강에서 경동교회의 낮은 계단과 부석사의 높은 계단을 비교하면서 부석사 계단은 속도를 늦추고 정동교회 계단은 시선을 돌려놓는 것으로 잠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공통점을 저자는 역설했다. “영주의 부석사는 반대로 계단이 높습니다.······. 그렇게 아래를 보고 걷다보면 어느 순간 짠하고 웅장한 대웅전이 나타납니다.”(68쪽) 부석사에 '대웅전' 현판을 단 전각은 없다. 당연히 ‘무량수전’이다. 故 최순우 국립박물관장의 산문집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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