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지은이 : 장하준
옮긴이 : 김희정·안세민
펴낸곳 : 부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후 3년 전 세계가 주목하는 장하준의 신작' 띠지의 문구다. 벌써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출간된지가 3년이 되었다. 나의 책읽기는 너무 게으른 것인가. 지난 '되새김글'을 뒤적이니, 2009년 8월 16일 책읽기를 마쳤다. 이 책도 온라인 서적 시장바구니에 던져놓고 하루이틀 미루고 있다가, 주민자치센터 공용도서로 구입된 책을 대여한 것이다. 아무튼 나의 게으름이 한권의 책값을 벌었다. 나의 서평은 현실 참여적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만큼 시간이 흐를수록 시의성이 떨어진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다음 뷰'에 먼저 올리고, 이 책의 서평도 뒤따라 포스팅해야겠다. 그래야 앞뒤가 맞겠다. 블로그를 뒤늦게 개설한 넷맹의 자기한계다. 또한 베스트셀러라면 일부러 한발짝 뒤로 물러나, 열기가 가신뒤 천천히 음미하는 삐딱서니 기질도 한몫한 것 같다. 어쨌든 대여한 책이지만 제때 잡은 것은 다행이다.
표지 이미지는 달러화폐의 인물의 입을 테이프로 봉했다. 내게는· 정치·경제·이데올로그를 장악한 신자유주의자들이 언론조작으로 대중을 우매화시킨 현실세계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하고, '돈 넣고 돈 먹기 식', '무조건 돈만 많이 벌면 장땡'이라는 파렴치한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의 위선을 저자가 테이프를 벗겨내고 폭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행동하는 지식인' 의 전형 촘스키는 신자유주의란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장갑을 벗은 자본주의, 즉 소수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원래의 경향이 도달한 지점'이라고 일축하고, 세계화란 '기업과 부자들이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세계를 더 쉽게 지배할 수 있도록 협정을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정곡을 찌른다. 그렇다면 허술하고 어리숙하기까지 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진창에 왜 세계는 빠져 들었는가? 그것은 아르헨티나가 신자유주의를 살렸다고 저자는 말한다. 300만명의 실업자를 양산한 영국 보수당의 대처를 살린 것은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전쟁 때문이었다. 애국심의 바람을 타고 대처는 재선에 성공하면서 신자유주의가 뜬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한 국가들은 IMF나 세계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유시장 정책을 택해야만 했다. 그런데 결과는 바로 쪽박을 찾다. 이렇게 맹점이 많은 신자유주의 이론이 왜 득세할까. 그것은 돈많은 기업들에게 유리하므로 후원을 많이 받고, 세계 경제의 완장 찬 작자들이 내세우니깐 뭔가 그럴듯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가 내세우는 국가주도 산업성장이란 이 땅에서는 개발독재로 나타나지 않았는가. 저자는 이렇게 답변한다. 당시 냉전구도속에서 산업정책이 독재와 결합된 것이라고. 이래서 MB 정권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정권이 개발독재를 찬양하고 있지 않은가. 이건 죽도 밥도 아니다.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부자들의 감세나 각종 규제를 철폐해서 전체 파이를 키워 자본의 절대왕국을 구축하자는 정책인데 무슨 공정사회인가.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저자는 '수많은 문제점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좋은 경제 시스템'이 자본주의라고 강변한다. 그럼 저자의 말대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인류는 유토피아에 도달할 수 있는가. 지구온난화로 섬나라들은 수장위기에 처하고, 자본에 먹힌 축산은 공장식 사육으로 메탄·이산화탄소·일산화질소를 방출하여 대기를 오염시키고, 프레온 가스로 대기권의 오존층은 구멍나고, 전 세계 인구의 과반수가 도시에 몰려 빈곤과 질병이 만연하고, 현대문명을 지탱하는 화석연료가 동이 나자 현대판 제국주의인 신자유주의가 전쟁을 불러오고, 산업폐기물로 인한 수질 오염으로 물전쟁이 터지고, 유전자조작 식품이 전 인류의 밥상에 올라 생명을 위협하고, 지구의 허파라는 열대우림은 1분마다 축구장 10 ~ 20개 크기가 베어지고``` 이러다 한도 끝도 없겠다. 앞서 열거한 환경파괴가 가져온 지구재앙은 자본주의의 부산물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나는 대안을 찾을 수가 없다. 근대화, 산업화가 가져 온 전 지구적 파멸 앞에 인간은 '예정된 운명'의 길로 다가서는 것 같다. 이반 일리치가 말했던가. '인간이 만든 제도하에서 최선의 타락은 최악이 된다'고. 자본주의의 끝없는 경제성장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밑바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대 산업문명을 일으킨 화석연료의 고갈이 눈앞이다. 인류는 과학기술로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하여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전혀 불가능하다. 자본주의라는 타이타닉호가 신자유주의라는 빙하와 부딪혀 살아 남더라도 배를 띄울 수 있는 물 자체가 말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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