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날아라 새들아

대빈창 2011. 1. 13. 05:03

 

 

책이름 : 날아라 새들아

지은이 : 최성각

펴낸곳 : 산책자

 

어릴적을 회상하면 나는 물과 굉장히 친했다. 여기서 친수(親水)는 토건족 배불리기 사업으로 4대강을 마구 파헤치고 그 주변을 인공녹색화시키는 MB식 녹색성장과는 전혀 연관이 없다. 말그대로 나는 물을 좋아했다. 수영, 아니 헤험을 또래 중에서도 이른 편인 초등학교 2학년때 익혔다. 나의 고향은 김포다. 드넓은 김포벌판을 사행천인 한강이 구불구불 흘러내려 강변 마을마다 포구가 있었고, 가을이면 풍성한 들녘은 황금빛으로 넘실거렸다. 그러고보니 나의 고향 김포는 황금빛 포구(金浦)였다. 그해 큰물진 한강은 지류마다 흙탕물을 마구 쏟아부어 논두렁과 개천 제방의 경계를 지워버리고 있었다. 호기심에 마을앞 들녘을 가로지르는 냇가의 노깡(폭이 좁은 수로의 다리역할을 하던 큰 원통의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서있던 나는 동갑내기의 무모한 미련(?)에 저승사자 문턱까지 갔다왔다. 어릴적 동무가 갑자기 나를 물로 밀어버린 것이다. 물귀신과의 사력을 다한 사투 끝에 운이 좋았는지 풀끄덩이를 움켜잡고 간신히 소용돌이치는 흙탕물 속에서 기어나올수 있었다. 아마! 겁에 질린 나의 입술은 새파랗게 질렸을 것이다. 얼떨결에 물에 뜨는 방법을 몸에 익히게 된 것이다. 여름방학내내 나는 물속에서 살았다. 제법 넓은 한강 지류는 마을에서 1시간너머 거리에 있었다. 아침을 먹자마자 나는 동네형들을 따라 천연 수영장으로 향했다. 두세시간 물에서 놀다보면 허기가 몰려들기 마련이다. 앞선 일행이 지쳐 마을로 돌아가면 나혼자 물속에서 놀면서 오후 일행을 기다렸다. 한달넘게 물속에서 살던 나는 온 몸이 햇볕에 그을려 새까만 몸으로 개학일날 등교하여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2학기가 시작되고도 나의 물사랑은 멈출 줄 몰랐다. 오후에 학교를 파하면 신작로를 걷다 국도를 가로지르는 냇가를 만나면 바로 옷를 훌러덩 벗어던지고 물에 뛰어들었다.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들면 한강도 갈수기라 지류는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또래들은 빠께스를 하나씩 들고 여름철 놀이공원이었던 천연 수영장으로 몰려 들었다. 더듬질.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이다. 정강이 밖에 안 차는 물속에 털썩 주저앉아 주변 물속 여기저기에 웅덩이를 만들었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잉어나 붕어, 메기가 그 웅덩이에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렇다. 말그대로 물반 고기반 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기억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 신작로에 아스팔트가 깔리고, 들녘은 경지정리를 했다. 마을에서 흘러 나오는 실개천이 모세혈관처럼 뻗어나가 지류와 만나고, 그 지류는 다시 한강 본류로 흘러 들어갔다. 그런데 80년대 후반부터 나즈막한 산자락에 몸을 움추린 마을마다 소규모 영세업체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무단방류한 오·폐수로 냇물은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총천연색을 띠기 시작했다. 당연히 물고기가 살 수 없다. 산업폐수로 오염된 냇물의 주인은 우렁이였다. 나는 우렁이가 그렇게 생명이 질긴 놈인 줄은 미처 몰랐다. 미꾸라지도 없는 혼탁한 물에서 우렁이는 썩은 사체에 떼거지로 매달려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것이 아닌가. 아마! 이 우렁이들의 속살은 더욱 질길지도 모르겠다.

2007년말 녹색평론사에서 출간된 '달려라 냇물아'을 접하고, 저자가 이끄는 '풀꽃평화연구소'와 인연을 맺었다. 벌써 3년전이다. 그리고 이책은 2009년 초여름에 연구소가 선물한 3권의 책 중 한 권이다. 모두 알다시피 '달려라 냇물아' '날아라 새들아'는 윤석중 선생님이 지으신 어린이날 노래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어린시절 김포 고향의 냇물은 달음박질을 쳤다. 그런데 '한강의 기적(?)'을 일군  놀랄만한 경제성장을 일으킨 나라답게 그 아름답던 '달려라 냇물아'는 폐기처분되었다. 그리고 나는 서해의 외딴 섬으로 들어왔다. 섬에는 다행히 새들이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다. 꽁꽁 언 까치밥을 시린 부리로 쪼는 까마귀와 까치가 석양 노을을 날개짖으로 털어냈다. 하지만 이 평화가 언제까지 지속될까. 국민의 70%가 반대하는 운하를 '4대강살리기'라는 우격다짐으로 토건업자의 호주머니 부풀리기에 혈안이 된 이 땅의 몰골을 보고 있자면 더운 김이 입에서 연신 뿜어져 나올수 밖에. 하긴 공직자 중 재산이 가장 많은 분이 대통령으로서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이 얼마전 열반하신 법정스님의 '무소유'란다. 말에 대한 책임은 눈꼽만치도 찾을 수가 없다. 서민들의 삶은 무저갱으로 빠져 드는데, 연일 공정사회와 선진국 타령이다. 무슨 진정성을 바라겠는가. 말뿐인 성찬 앞에서.

인간이 이래도 되는 것인가. 1667년 모리셔스섬에 살던 날수 없는 새 '도도'는 호모사피엔스에 의해 멸종당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보고서에 의하면 이번 세기말에 지구 평균기온은 최대 6.4℃ 해수면은 59㎝ 상승한다고 한다. 이대로 간다면 도도를 없앤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의 멸종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는 꼴이다. 이렇게 어리석은 동물이 만물의 영장(?)이라니. 반생태적 문명이 활개치는 이 맹렬한 물신의 시대에 새들이 훨훨 날고, 냇물이 시원하게 흐르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저자의 아픔이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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