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살아 있는 지구
지은이 : 앨러스테어 포더길 등
옮긴이 : 김옥진
펴낸곳 : 궁리
255*287 책 크기다. A4 국배판보다 가로는 훨씬 크고, 세로는 약간 짧은 새로운 책 판형이다. 더군다나 양장본이라 도저히 휴대가 불가능하다. 가격도 38,000원으로 독자의 부담이 크다. 마음먹고 손에 넣은 책인데 1년여를 책장 한구석에서 방치되고 있다. 올겨울은 예년보다 눈이 흔하다. 열흘전에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눈밭을 휩쓴 바람은 칼날같다. 텃밭의 고랑과 이랑을 구분할 수 없을만치 많은 눈이 쌓였다. 연말연시의 휘황찬란한 도시불빛에 쓸려 다니는 인간군상들에 연민마저 느껴진다. 들녘과 바다 모두 일손을 놓아 더욱 한적해진 섬의 연말연시를 교회의 철지난 크리스마스 트리가 외롭고 쓸쓸하게 꼬마전구를 반짝인다. 나의 생활방식은 TV와 거리가 멀다. 드라마에 목을 메는 열혈 신청자들을 이해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나의 눈길을 끄는 프로그램이 있다. '동물의 왕국'이다. 더군다나 요즘은 자연생태 다큐멘터리에 일가견을 자랑하는 BBC가 제작한 프로가 연일 방송되고 있다. 신이 난 나는 환경생태 다큐멘터리 방영시간이 아무리 늦어도 눈망울은 또렷또렷 해진다. 얼치기 생태주의자로 막내기질의 하나인 집착력(떼쓰기)이 빛을 발하는 것일까. 양장본이고 판형이 워낙 커 온돌방에 배를 깔고 보기에 딱 좋다. 첫날 연휴의 소일거리로 손에 잡힌 책이다. 녹색평론을 정기구독하기 전 9년여를 보았던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특집판처럼 사진이 시원하다.
이 책은 BBC의 자연 다큐멘터리 '살아 있는 지구'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지구, 극지방, 숲, 대평원, 사막, 산, 동굴, 민물, 우림, 얕은 바다, 깊은 바다 등 11개의 주제에 맞춰 카메라 앵글을 들이댔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의 신비를 담아내기 위해 카메라는 5대양6대주를 누빈다. 무겁기까지 한 겉표지를 열면 서문 뒤에 주요 촬영장소 54곳이 표시된 세계지도가 나타난다. 위 겉표지 이미지는 코끼리 떼가 사바나 평원을 이동하는 장면을 잡은 그림이다. 뒷표지는 남극의 펭귄 떼가 바다에 연이는 설원에 모여 있는 그림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는 극한적인 동식물의 생태에 나의 눈은 휘둥그레진다. 몇가지만 소개한다. 17년 매미(Brood X)는 단풍나무 잎에 알을 낳는다. 부화한 애벌레는 땅을 파고 들어가 나무뿌리에 주사기같은 입을 박는다. 17년 후 애벌레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 성체가 되지만, 그 기간은 고작은 10일간이다. 낙타는 물을 안 마시고 약 1주일, 먹이를 먹지않고 10일을 버틴다. 낙타는 혹의 지방 0.5kg으로 물 0.5kg을 만들 수 있다. 물을 마실 여건이 되면 낙타는 몇분안에 체중의 30%인 50ℓ의 물을 마실 수 있다. 태국북부의 작은 동굴 2군데에 100여마리 밖에 없는 '케이브에인절'이라는 10cm 길이의 물고기는 납작한 지느러미 밑 고리를 이용해 물밖의 축축한 수직벽을 기어 오른다. '텍사스동굴도롱뇽'은 겉아가미가 귀밖으로 나와 있으며, 먹이가 없어도 꼼짝않고 6년을 버틸 수 있다. 세계유일의 민물바다 표범 '네르파'는 바이칼호에 5만마리가 생존하는데, 2,200만년전 북극해에서 사라진 강을 타고 이동한 것이다. 중앙해령은 지구 둘레 45,000㎞에 걸쳐 있으며 물온도가 375℃에 달하는데 고유의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화물을 황화수소 형태의 에너지로 고정하는 특수박테리아에 의존한다.
얼마나 경이로운 지구의 생태계인가. 그런데 100년 뒤에도 이 아름다운 행성의 생명체들이 온전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수밖에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찮은 동물인 인간'의 만행 때문이다. 46억년전에 탄생한 지구를 고작 산업문명 이후의 인간들이 못쓰게 망쳐놓았다. 기후학자들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고 위험경고를 보내고 있지만 탐욕에 찌든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쇠귀의 경 읽기다. 지구라는 행성은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유기체다. 지구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중증 말기 암환자의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인간 세계의 성장과 경쟁에 지쳐버린 지구는 100년에 한번 일어날까말까한 기상이변이 매년 지구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터지고 있다. 재앙은 벌써 시작되었다. 뜨거워진 지구에서 인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이미 시작했다. 4대강을 마구 파헤쳐 하천생태계를 전멸시키면서도 '녹색성장'이란다. 그래서 나는 인간에게 희망을 걸 수 없다. 공멸이 눈앞인데 지리멸렬한 인간들은 자기 파이 키우기에 골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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