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말과 사람

대빈창 2010. 12. 27. 01:05

 

 

책이름 : 말과 사람

지은이 : 이명원

펴낸곳 : 이매진

 

문학평론가 이명원을 보고 구입한 책이다. 얇지만 다소 생소한 개념들의 돌출로 쉽지만은 않은 '시장권력과 인문정신'을 책씻이하고는 연이어 출간된 이 책을 구입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여가 흘렀다. 책장에서 잠든 시간이 너무 오래다. 성탄과 연말 분위기에 들뜬 도시와는 다르게 찬바람만 매섭게 몰아치는 외딴 섬의 겨울 밤은 책읽기에 제격이다. 출판사는 이매진이다. 그러고보니 오래전에 잡은 손호철의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와 같다. 연륜이 오래지 않은 신생 출판사로 알고 있는데 그런대로 나의 취향에 맞는 책들을 펴내 반갑다. 이매진(Imagine)은 분명 존 레논의 곡명에서 따왔을 것이다. 상상해봐, 천국이 없다고 / 노력하면 너무 쉬워, 우리 밑에 지옥도 없다고 / 우리 위에는 하늘 뿐이라고 상상해봐, 모든 사람들이 / 오늘을 위해 산다고 / 반전 시위의 대표곡인 이매진의 첫 구절이다. 이 노래는 베트남 반전 운동의 기류 속에서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평화'의 가치를 일깨웠다. 세계적 락 밴드의 리더로 예술가의 자유분방한 기질의 소유자였던 존 레논은 아나키스트 오노 요코를 만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급진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 누군가 말했다. '진보는 부러 선택한 상태이고, 보수는 진보를 선택하지 않은 모든 상태'라고.

이 책은 저자가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소설가 이문열, 조정래, 문학평론가 백낙청, 서울대 디자인학과 교수 김민수, 철학자 김상봉,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을 인터뷰했던 '이명원의 좌우지간'을 한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6명의 인터뷰어 중 오른편에 선 이는 소설가 이문열 뿐이다. '좌우지간'이 아니라 너무 왼쪽으로 편중된 것이 아닌가. 그 이유를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진보주의자들은 중도적 자유주의에서 급진적 민주주의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한데, 오히려 보수는 올드라이트와 뉴라이트는 그 나물이 그 나물이듯이 스펙트럼이 협소하다고. 고전적 의미에서 이 땅의 지식인을 대표하는 이들은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진보를 선택하지 않은 상태'였던 그때 나는 이문열 소설에 몰입했었다. '젊은 날의 초상', '영웅시대', '황제를 위하여' 등. 최루탄과 화염병과 공장노동자를 거치면서 이문열과 나와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가로 놓이게 되었다. 세계를 보는 시각에서. 그러고보니 나는 80년대 학번의 범생이였는지도 모른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백낙청의 창작과 비평. 오히려 나는 해직교수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디자인의 김민수, 철학의 김상봉 교수와 거리감이 있었다. 김민수 교수가 새롭게 다가온다. '디자이너는 단순한 상품미학의 매개자나 기능인이 아니라, 현실과 세계 전체를 철학적으로 사유하면서 시민적인 양식과 실천에도 투철한 존재'라고. 뒤통수를 꽝! 때리는 준엄한 죽비의 깨우침이다. 그렇다. '환타스틱이니, 럭셔리니' 역겨운 혀꼬부라진 소리를 지껄여야만 대우받는 이 땅의 한심한 디자이너 세계에서. 요즘 나는 외롭고 쓸쓸해 질때마다 김상봉 교수의 '내부로의 망명'이라는 개념을 떠 올린다. 그 뜻은 이렇다. 지금은 자본이 인간을 완전하게 식민지화한 시대이다. 국경을 넘어 망명할 곳이 없는 지금 '내부로의 망명'이 가능할 뿐이다. 가장 확실한 망명은 자발적 낙오자가 되는 것이다. 정의와 진실이 왕따 당하는 거꾸로 된 사회에서는 오히려 성공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현재의 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는 녹색평론의 김종철이다. 그렇다. 나는 '근원적 비관주의자'로서의 남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손 가까운 곳에는 항상 녹색평론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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