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77편, 이 시들은
지은이 : 김명수
펴낸곳 : 녹색평론사
시인 김명수(金明秀, 1945- )의 시집을 이제 펼치다니. 『월식』, 『하급반 교과서』, 『침엽수 지대』등이 눈에 익었지만 이상하게 인연이 닿지 않았다. 인문생태 격월간지 『녹색평론』이 2022년 휴간에 들어갔다. 출판사는 후원인에게 네 권의 책을 보내주었는데, 그중 한 권이 이 책이었다. 나는 무엇보다 반가운 것이 ‘녹평시선 01’이라는 딱지였다.
녹색평론에서 펴낸 최초의 시집이었다. 이제 《녹색평론사》가 시집을 펴낸다는 의미였다. 고故 김종철 선생은 말했다. “모든 진정한 시인은 본질적으로 가장 심오한 생태론자”라고. 시인은 산문 「세계와 인간의 자유 ―미지의 독자에게 드리는 편지」에서 “병들어가는 지구를 떠올리며 이에 대한 한 상징인 사라지는 벌들과 절멸되는 고래들, 먼 우주를 밝히는 별들의 고독과 바위들의 적막을 시화”(184쪽)해 보았다고. 시인의 시들은 하찮은 사물과 소시민을 불러내고, 그들의 소외와 슬픔을 위로하고, 사소한 존재를 긍정했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정현은 추천사에서 “시가 역사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하찮은 취미생활로 강등되었을 때, 인간은 꿈꾸는 법을 잃어버리게 되고 변혁의 가능성은 한없이 줄어드는 것”(191쪽)이라고 말했다. 시집 『77편, 이 시들은』은 시력詩歷 45년의 시인이 희수喜壽(77세)를 맞아 펴낸 11번째 시집이었다. 시집은 5부에 나뉘어 77편이 실렸다. 1부에 실린 7편의 시들은 연작시 「강」 이었다. 「강 6」은 16쪽에 달하는 산문시로 유년시절, 시인으로 이끈 최초의 풍경이 그려졌다. 선생님에게 ‘시인’과 ‘시’란 단어를 처음 들었다. 선생은 詩를 이렇게 설명했다.
“시는 뒷냇물이 하는 말을 받아 적는 거란다. 그리고 살구꽃이 피어 있을 때의 마음을 받아 적는 거란다. 또 보리밭 위로 날아오르는 종달새를 오랫동안 바라보는 거란다. 그때 뒷냇물이 살구꽃이 보리밭이 종달새가 너희들에게 무슨 말을 걸어올 거야. 그걸 받아 적는게 시라고 한단다. 모든 사물들은 다 말을 하고 있단다. 그 말을 우리가 듣지 못할 뿐이지.”(29-30쪽) 마지막은 「별 목걸이」(36쪽)의 전문이다.
무엇이라 여겼더냐 / 저 성간(星間)과 성간의 / 공허와 충만을 / 열망은 소진(燒盡)을 예감했던가 // 별들과 별들 사이 / 꿰어보려고 / 어둠 속 살별 하나 / 피어났으니 / 어둠 속 살별 하나 / 스러졌으니 // 어둡고 막막한 밤하늘 아래 / 꽃 한 송이 다시 피는 / 이 봄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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