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순교자
지은이 : 김은국
옮긴이 : 도정일
펴낸곳 : 문학동네
문학평론가 도정일의 산문집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에서 「소설 『순교자』의 미스터리」 를 만났다. 재미작가 김은국(金恩國, 1932-2009)의 대표작 『순교자The Martyred』의 해설이었다. 작가의 첫 소설 『순교자』는 1964년 뉴욕에서 출판되어, 미국에서 20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우리 문단은 아직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없다. 그동안 시인 서정주, 고은이 후보자에 올랐으나 아쉬운 기대를 던져주었을 뿐이다. 노벨문학상에 가장 근접한 작가는, 재미작가 김은국으로 한국계 최초로 노벨상 후보에 올랐다. 문학평론가 도정일은 첫 국역판이 나온 지 14년 후인 1978년에 옮긴이로 『순교자』와 첫 인연을 맺었다.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2010년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재출간하면서 평론가는 재번역을 맡았다. 군립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은 ‘세계문학전집 41’이었다.
소설의 무대는 한국전쟁 당시 평양이었다. 전쟁발발 직전 평양 지역의 열네명의 목사가 공산당 비밀경찰에 체포되었다. 고문 끝에 열두 명이 처형되었고, 두명 만이 살아 돌아왔다. 사건의 비밀열쇠를 쥐고 있는 신목사는 처형 현장의 진실을 감추었고, 젊은 목사 한목사는 미쳐버렸다. 1950년 11월 국군의 평양입성후, 육본 정보국 평양 파견대장 장대령과 소설의 화자話者 이대위는 열두 명의 순교자 사건을 조사했다. 장대령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열두 명의 목사들을 순교자로 만들고 추도예배까지 추진했다. 대학강사 출신의 이대위는 목사들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고 애쓴다. 또다른 인물 이대위의 친구 해병대 박대위는 열두명 목사의 지도자인 박목사의 아들로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궁금해했다. 신목사는 진실이 진실일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십자가를 지기로 결심했다.
“목사님의 신이건 그 어떤 신이건 세상의 모든 신들은 대체 우리에게 무슨 관심을 갖고 있습니까? 당신의 신은 우리의 고난을 이해하지도 않을뿐더러 인간의 비참, 살육, 굶주린 백성들, 그 많은 전쟁 그리고 그 밖의 끔찍한 일들과는 애당초 아무 상관도 하려 하지 않습니다.”(190쪽) 진실을 감추려는 신목사에게 이대위가 퍼부은 말이었다. 진화론자․무신론자 나에게 가장 와닿는 말이었다.
소설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이라는 비참한 운명 앞에서 무력하고 무의미한 인간 존재가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는가하는 물음표를 던졌다. 옮긴이는 소설 속 사건을 풀어가는 추리적인 기법, 빠른 전개와 반전, 단문의 건조한 문체가 가독성을 높였다고, “한국의 비극적 역사 속에서 발생한 특수한 사건을 인간의 실존과 운명이라는 ‘세계문학적’ 주제와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이 ‘순교자’의 큰 업적”(317쪽)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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