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그는 걸어서 온다

대빈창 2024. 8. 2. 07:00

 

책이름 : 그는 걸어서 온다

지은이 : 윤제림

펴낸곳 : 문학동네

 

시인이 낯설다. 나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두 번째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부록∣에 실린 ‘추천사 자선 베스트 10’의 한 권이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 군립도서관에 비치되었다. 2008년에 출간된 묵은 시집이었다. ‘종합열람실’아닌 ‘보존자료실’에 보관되어있어 직원의 도움을 받아 대여했다.

시인 윤제림(1960- )은 198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사랑을 놓치다』(문학동네, 2001)에 이어 칠년 만에 나온 다섯 번째 시집이었다. 시인은 ‘작고 사소한 것들로 시를 읽는 즐거움을 제대로 버무려낼 줄 아는 시인“으로 평가받았다. 4부에 나뉘어 66편이 실렸다. 해설은 시인․문학평론가 이홍섭의 「화엄세간華嚴世間과 사람의 저녁」이었다.

시인은 말했다. “낡거나 모자란 것들 쪽에 관심이 많이 간다. 물건이 그렇고, 사람이 그렇다.” 3부에 실린 이 땅에서 소외당하는 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시편들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심청가」는 밀입국하다 적발된 중국 동포들의 애환을. 「가정식 백반」은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찾은 이주노동자들을. 「안남댁」은 시어머니와 남편의 학대에 가출한 베트남 새댁 결혼이민자를. 「손목」는 공장에서 손목이 잘린 스리랑카출신 소년 노동자를.

판소리 제목을 딴 시편들도 곧잘 섞였다. 심청가 연작, 홍보가, 수궁가, 춘향가, 적벽가 등. 표제작 「그는 걸어서 온다」는 망자를 데리러 오는 저승상자를 인간적인 시선으로 그렸다. 죽음과 노인, 임종을 그린 시편들이 1․2부 여기저기 널려있다. 「입국과 출국」, 「노인은 박수를 친다」, 「친구 하나를 버린다」, 「어떤 신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의견」, 「수궁가」, 「걸레스님」, 「저녁놀」, 「저승사자는 아는 사람이다」, 「사람의 저녁」등. 나는 책장을 덮으며,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사랑을 놓치다」를 대여목록에 올렸다. 마지막은 중광重光스님의 임종게를 따와 스님을 불량학생으로 희화화한 「걸레스님」(50쪽)의 전문이다.

 

청소당번이 도망갔다. / 걸레질 몇 번 하고 다 했다며 / 가방도 그냥 두고 가는 그를 / 아무도 붙잡지 못했다. // ‘괜히 왔다 간다’ / 가래침을 뱉으며 / 유유히 교문을 빠져나가는데 / 담임선생도 / 아무 말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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