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쓰러진 자의 꿈
지은이 : 신경림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시인 신경림(申庚林, 1935-2024) 선생이 지난 5월, 89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 내가 처음 만난 선생의 책은, 80년대 학창시절 두 권의 『민요기행』이었다. 선생의 詩를 다시 만나기까지 세월이 많이 흘렀다. 내가 잡은 『농무』는 개정판 22쇄로 2008. 12. 5. 발행되었다. 선생은 대학 2년 때 『문학예술』에 「갈대」, 「묘비」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등단 이듬해 봄, 낙향한 뒤 10년을 절필했다. 그동안 농부, 광부, 장사꾼, 공사장 노가다, 학원․학교 강사...를 떠돌았다. 시인에게 민중의 새로운 발견은 큰 문학적 자산이었다. 1973년 자비로 『농무』를 발간했고, 제1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농무』는 1975년 ‘창비시선’ 1호로 증보발간되었다.
내가 잡은 선생의 두 번째 시집은 많은 독자들이 찾은, 『가난한 사랑 노래』였다. 출간25주년 기념판으로 2013. 1. 31. 발행되었다. 표제시는 노동운동가가 지명수배 중에 교회 지하실에서 치른 비공개 결혼식의 주례를 서고, 축시를 낭독한 뒤 집에 돌아와 쓴 시였다. 이후 10여 년 간 선생의 시와 떨어져 있었다. 선생이 돌아가시고 부끄러움에 군립도서관에 비치된 시집을 찾았다. 『사진관집 이층』에 이어, 선생의 시집으로 네 권째 잡은 『쓰러진 자의 꿈』은 오래 묵은 시집이었다.
출판사 이름도 《창작과비평사》였다. 가격은 4,000원이다. 초판이 1993. 10. 30.에 나온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이었다. 민중들의 작은 꿈과 희망을 노래한 1부의 18편, 세상을 정직하게 살겠다는 자기고백의 시 2부 17편, 4부 14편, 인생의 의미․가치를 되새기는 3부 17편으로 모두 66편이 실렸다. 문학평론가 이병훈은 발문 「슬픈 내면의 탐구―절제와 질박함의 미학」에서, “겸손함과 소박함에서 나오는 자기절제와 질박함이 주는 은연한 아름다움과 힘이 시인의 독특한 인생관, 미학”(93쪽)이라고 말했다.
1970년대 한국 민중문학의 새 지평을 열어젖힌 선생의 시론은 “혼자만이 아는 관념의 유희, 그 말장난으로 이루어진 시에 대한 반발로서 더욱 대중의 언어로 대중의 생각을 끄는 것이 내가 주로 생각하는 시”라고 밝혔다. 『쓰러진 자의 꿈』은 모든 것이 바뀌고 쓰러지는 시대에 대한 통찰을 시편에 담아냈다. 제4회 '단재문학상' 수장작이었다. 마지막은 「싹」(17쪽)의 전문이다.
어둠을 어둠인지 모르고 살아온 사람은 모른다 / 아픔도 없이 겨울을 보낸 사람은 모른다 / 작은 빛줄기만 보여도 우리들 / 이렇게 재재발거리며 달려나가는 까닭을 / 눈이 부셔 비틀대면서도 진종일 / 서로 안고 간질이며 깔깔대는 까닭을 // 그러다가도 문득 생각나면 / 깊이 숨은 소중하고도 은밀한 상처를 꺼내어 / 가만히 햇볕에 내어 말리는 까닭을 / 뜨거운 눈물을 어루만지는 까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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