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민통선 평화기행
지은이 : 이시우
펴낸곳 : 창비
근 보름여 만에 책씻이를 했다. 만만치 않는 책의 부피도 나의 게으름에 한몫을 했지만, 내용의 중압감에 짓눌린 나의 심리상태가 더욱 주저하게 만든 요인이었다.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에서 언급한 사진작가 이시우의 단식투쟁은 근 50여일을 넘기고 있었다. 싸움 상대는 '국가보안법'이다. 잊을만하면 나타나 급작스레 뒤통수를 때리는 국가보안법이라는 망령에 나는 치를 떨수밖에 없다. '민통선 평화기행'의 저자 이시우를 나는 보지 못했다. 언젠가 시인 친구 함민복은 이시우가 강화도에 거주한다고 나에게 일러주었다. 그리고 민통선 평화기행이라는 책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그때 책을 구입하고 그를 만났어야 하는데 기회를 놓치고 나는 외딴 섬으로 들어왔고, 저자와는 이렇게 책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 어떻게보면 분단의 땅덩어리가 빚어내는 비극의 시나리오에서 주인공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비쳤듯이 엊그제 '인혁당' 사건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유신정권의 살인마적 작태를 보여준 조작사건. 사형선고 후 18시간만에 8명을 형장의 이슬로 만든 그 사건을 뒤돌아보면서 나는 우리 언론의 비열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없다. 독재정권의 나팔수 역할에 충실한 것은 그렇다치고, 32년이 지난 오늘 그들은 일말의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않았다. 그런데 웬걸 백주대낮에, 신문 만평에서 사나운 미친개로 그려지는 국가보안법이 주인을 물어뜯어 발기고있다.
지난 4월 19일 이시우는 대공분실 형사들에게 연행되었다. 그에게 덜미를 씌운 올가미는 국가보안법 제5조 반국가단체 자진지원 등의 혐의였다. 구속 사유는 '국군 및 주한 미군 부대를 계획적으로 관찰하여, 북한 등 반국가단체가 볼 수 있도록 인터넷에 공개했다'는 것이다. '민통선 평화기행'은 2003년 6월에 초판이 발간되고, 현재 4쇄까지 찍어냈다. 지금 이 책은 가까운 서적에 가면 손에 쥘 수있다. 나는 두달 전 인터넷 서적에서 구입했다. 우리나라 유수의 출판사인 창비가 찍어내고, 수많은 독자가 읽은 책이 '이적표현물' 소지죄라는 것이다. 그럼 독자들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해야 한다. 왜 '이적표현물 소지죄'라는 중죄자임에 틀림없으니까? 더 웃기는 것은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시에 한국을 대표하는 책 100권에 선정되어 영어와 독일어로 번역까지 되었다. 쉽게 말해서 국가보안법의 말도 안돼는 억지를 항간에서는 '이현령 비현령'이라고 하지 않던가. 즉 코에 걸면 코걸이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것이다. 아예 말이 나온김에 한마디만 더하자. 내셔널지오그래픽 한국판 창간호가 나온 것이 2000년 1월이다. 2003년 7월호 메인 기사는 '위태로운 평화의 현장을 가르는 DMZ'으로 글과 사진을 팀 오닐과 마이클 야마시타가 맡았다. 그럼 그들은 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할 수 없는가? 이러다 나는 몰매를 맞을지도 모르겟다.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을 고자질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
'민통선 평화기행'은 비무장지대와 대인지뢰에 관해 국내 최고의 민간전문가이자 평화운동가인 이시우가 비무장지대를 직접 답사하며 사진을 찍고, 발품을 팔아 쓴 답사(?)기다. 이 책에 실린 사진 중 나의 눈시울을 가장 뜨겁게 달군 사진은 276쪽의 방 한쪽에 세워 놓은 의족이 주인을 지켜보는 컷이다. SOFA(한미행정협정)에 발이 묶여 보상금 한푼 받지 못하는 수십 명의 대인지뢰 피해자들. 책을 읽어 나가는 내내, 나는 울화와 분노를 삭이려 냉수를 들이켜야 했다. 그리고 한달 간 잠잠하던 술병이 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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