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미안한 마음

대빈창 2007. 9. 3. 09:57

 

책이름 : 미안한 마음

지은이 : 함민복

펴낸곳 : 풀그림

 

시인 함민복은 선하다. 다르게 말하면 마음결이 곱다. 자주는 못 보지만 불현듯 시인이 생각나면 나는 화도 동막리로 달려갔다. 시인을 보려면 지금 그의 위치를 추적해야 한다. 손전화(핸드폰이라고 써 오던 것을, 나도 시인을 따른다)부터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출판이나 원고 문제로 서울에 올라가 있거나, 그도 아니면 이 책에도 나와 있듯이 고깃배를 타고 화도와 장봉도 사이 바다에 떠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지금까지 낸 4권의 시집과 2권의 산문집 중 유일하게 자필서명이 들어있지 않은 책이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올 정초 나는 오랜만에 시인의 누추한 집을 찾았다. 그때 시인은 2권의 초창기 시집과 신간 도서인 이 책을 나에게 건넸다. 2권의 시집은 앞서 소개한 '우울씨의 일일'과 '자본주의의 약속'이다. 그런데 막 출간된 따끈따끈한 산문집 '미안한 마음'은 한권 밖에 여유분이 없었다. 대화 중에 나는 시인의 산문집이 출간된 것을 알게 된 연유를 얘기했다. 시인이 강화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더구나 나의 친구라는 사실에 기꺼워하던 직장 선배가 있다. 그가 병마와 싸워 온지가 벌써 1년 가까이 되었다. 의지가 강한 그는 힘에 부치는 병을 이겨내고 복직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외딴 섬에 있는지라 그 선배를 자주 찾지는 못했지만 자투리 시간이라도 나면 선배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야! 함민복 시인 산문집 나왔더라." 선배은 얼굴도 못 본 시인의 새책 출간을 자기 일처럼 기꺼워하며 출간 소식이 실린 신문의 스크랩을 보여 주었다. 한 사무실에 근무하던 시절에도 선배는 시인의 소식을 신문에서 접하고는 그 내용을 나에게 넌지시 일러주곤 했다. - 나는 대중매체와 별로 친하지 못하다. '자발적 복종'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멀리 할 수밖에 없다. - 나의 말을 들은 시인은 선배의 이름을 물은 뒤 특유의 휘갈기는 글씨체를 버리고 제법 정성을 들여 '빠른 쾌차를 기원합니다.'라고 쓰고 나의 손에 3권의 책을 건넸다. 시인은 아마 병자를 생각해서 나름대로 정서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언제라도 볼 수 있으니 다음에 책을 준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람일이란 것이 마음대로 되는가. 성질 급한 나는 조급증에 인터넷 서적에 들어갔고, 반년이 지난 지금 게으르게 책씻이를 했다. 책을 손에 넣는 과정을 서술한 글머리가 너무 길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시인의 따뜻한 마음씨를 엿볼 수 있는 두 가지 에피소드를 밝힌다. 4 ~ 5년전 초여름이었을 것이다. 전날 따로 코가 삐뚤어지게 처먹은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쓰린 속을 부여잡고 사기리 언덕에 위치한 묵밥집으로 향했다. 시인의 고향은 두메산골이라 어릴적 입맛이 살아있는 지 묵밥을 유달리 좋아했다.  우리가 가끔 찾는 그 집의 묵밥은 시원하기가 이를데 없다. 직접 담근 도토리묵을 성글게 썰고, 묵은 신김치와 양념장을 국물에 말아, 더군다나 살얼음을 띄워준다. 알코올에 부대낀 속이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제법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앞서가던 시인이 말을 꺼냈다. "○ ○ 일보에서 칼럼 연재가 들어왔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청탁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나는 시인의 고민을 한 눈에 들여다 볼수 있었다. 속마음과는 달리 시인의 가난한 삶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는 나의 입에서는 "그래도 그 신문 독자들에게 너의 생각을 밝히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는 나의 말꼬리는 힘을 잃었다. 그리고 두달 여가 지나 만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나는 얼굴 한가득 환한 웃음을 지으며 시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혼잣말을 했다. '그럼 그렇지,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래도 지조는 지켜야지.'

아무튼 오래전 일이었다. 시절은 병어가 나올 철이니, 아마 5 ~ 6월쯤 되었을 것이다. 어째 두 가지 에피소드를 말하는데 하나같이 술과 연결되니, 아마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무조건 술부터 처마신 모양이다. 하긴 첫 만남부터 냉면 그릇으로 물 마시듯 막걸리를 들이킨 사이니깐 어쩔 수 없다. 무슨 일인지 나는 휴일에 낯술을 먹고는 사무실에서 빈둥거리고 있다가, 시인이 생각나 손전화를 넣었다. 아! 그런데 시인도 이미 혀꼬부라진 소리가 아닌가. 감 나쁜 손전화인지라 무슨 말인지 전혀 감을 못 잡아 대충 안부나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시인은 계속 나를 손전화롤 불러냈다. 요지인즉슨 "야 너 산병어 봤어. 빨리 일루 와. 내가 산병어 맛 보여 줄께." 술이 취한 시인은 막무가내였다. 몇 번이나 거절하다 나는 할 수없이 택시를 불렀다. 다 알다시피 화도 동막리는 보통 거리가 넘는다. 동막 해수욕장을 지나 저 멀리 시인의 집 청화대, 백악관, 자금성 지붕이 보이는 휘어진 길에서 시인은 대바구니를 들고 비틀거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어나 밴댕이는 성질이 급해 물 밖에 나오면 바로 죽는다. 어째 그 병어는 죽지않고 살아서 나를 고생시켰는지 모르겠다. 이 책에도 나오는 익선이 형님네 집으로 호기롭게 쳐들어간 우리는 산병어로 고주망태가 되도록 처먹었다. 시인의 잠재의식 속에 언제인가 나도 기억할 수 없는 내가 말한 '산 병어'에 대한 기억이 숨어있다, 취중에 튀어 나왔으리라. 나는 시인의 마음을 어느정도 안다. 산 병어 안주로 술을 먹은 후 우리의 에피소드는 더 이어진다. 나는 그 일을 혼자 '말죽거리 잔혹사와 쌍절곤'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사건은 시인 함민복 얘기가 나올 기회가 오면 다음에 털어 놓겠다. 오늘 얘기는 완전히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 아무튼 나는 시인 함민복에 대하여 할 말이 많은 사람 중의 하나다. 참! 내가 건네는 책을 받아 든 선배는 몇 쪽 뒤척이다 '후계자 규호"라는 이름을 발견하고는 "시인은 사소한 일도 이렇게 멋진 글로 만든다니깐!"하고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  (0) 2007.09.09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0) 2007.09.05
민통선 평화기행  (0) 2007.08.29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0) 2007.08.15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0) 2007.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