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해방일기 6

대빈창 2025. 2. 25. 07:30

 

책이름 : 해방일기 6

지은이 : 김기협

펴낸곳 : 너머북스

 

하편이 시작되는 『해방일기 6』은 이승만의 미국 방문, 미군정의 좌우합작 지원, 민세 안재홍의 민정장관 기용, 트루먼독트린 등 등 일련의 사건을 통해 해방정국을 풀어냈다. 1946년 12월 초순 이승만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 그는 김구, 김규식과 위상에 큰 차이가 없었다. 4개월간의 미국 체류에서 돌아왔을 때 이승만은 경쟁자들을 확연히 따돌렸다. 이승만의 미국 체류 중에 나온 트루먼독트린은 남조선의 분단 건국과 이승만의 권력 장악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6권의 부제는 ‘냉전에 파묻힌 조선 해방’으로, 시간대는 1947. 1. 2 ~ 4. 30. 이었다. 차례는 4장으로 구성되었고, 각 장의 말미에 실은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는 저자와 안재홍 선생과의 가상대담이었다. 역사학자는 서문 「조선을 냉전의 길로 몰아넣은 이승만의 승리」에서 말했다. “이북에에서는 1년 전에 세워진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중심의 자치 정권이 총선거를 통해 본궤도에 올라서고 있었다. 이남에서는 미군이 그대로 정권을 담당하면서 친일파 성향의 조선인들을 채용했다.”(5쪽)

1장 반탁운동 재개와 건국 노선 갈등(1947. 1. 2 ~ 30). 김구의 비서 장준하(張俊河, 1918-75)는 경교장을 나와 이범석(李範奭, 1900-72)의 조선민족청년단(족청)의 교무처장으로. 하지(John R. Hodge, 1893-1963) 미군 사령관은 전국적 소요사태 앞에서 경찰개혁을 단행하지 못하고 극우파에 의지하여 현상유지. 미군정은 행정권 자체를 조선인에게 넘겨주지 않고, 자치를 강화하는 인상을 주기 위해 명목상의 책임자를 조선인으로 하고 미군 담당자는 고문의 명목을 가지는 ‘조선인화koreanization' 정책을 실시. 반민족적이고 반민주적인 경찰을 위시하여 탐관오리와 부정직한 통역관의 협잡 등 잘못된 ’조선인화‘가 군정의 가장 큰 문제. 세 우익 지도자에서 김구는 신탁통치를 이유로 3상회의 결정을 반대하고 군정에 협조하지 않는 노선, 이승만은 반탁운동을 업고 조선 문제를 유엔으로 가져가 분단 건국을 꾀하고 김규식은 조선 건국이 연합국의 합의에 따르는 노선.

2장 김구ㆍ이승만의 동상이몽(1947. 2. 1 ~ 29). 청우당(靑友黨, 천도교청우당)은 특정한 사회ㆍ경제 체제에 집착하지 않고 민족주의 원칙을 내세우는 ‘중도’ 노선. 김구의 반탁 운동은 ‘외세 배척’의 명분보다 중경 임정의 정국 장악이라는 현실적 목표에 많이 좌우. 워싱텅의 하지 사령관 소환은 모스크바3상회의 준비를 위한 기술적 조치. 정치적 식견이 아주 얕은 군인으로 독창적인 안목도 투철한 자세도 보여준 적이 없는 남조선점령군사령관으로 3년간 재임한 하지.

3장 외세에 따른 분단 건국 VS. 통일 건국(1947. 3. 1 ~ 28). 조선 최초의 근대적 총선거는 이북 지역의 1946. 11. 3. 도ㆍ시군인민위원 선거. 북로당 지도부가 자기 몫을 최대한 키우려하지 않은 것은 인민위원회의 건강한 성격을 확보하기 위한. 소련군사령부에 의한 인민정권에 대한 지도와 감독이 사라졌고 행정권이 북한 사람들의 손으로 넘어간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성립. 트루먼독트린은 그리스, 터키와 마찬가지로 조선에서도 돈으로 공산주의를 막겠다는 방침. 장택상(張澤相, 1893-1969)은 외무장관, 국회부의장, 국무총리를 지낸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 아래 야당을 이끈 인물, 몰상식하고 독단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폭력적인 파시스트, 국무총리 시절 이승만의 발췌개헌안을 추진. 노동자들의 24시간 시한부 파업에 수천 명을 검거한 경찰의 좌익 탄압과 극우파의 테러에 나팔수가 된 동아일보.

4장 미군정, 친일파에게 친미파의 길을 열어주다(1947. 4. 2 ~ 30). 군정청은 정치ㆍ언론 탄압, 파업, 소요 사태를 군정 재판에서 다뤄었는데 1947년까지 무서운 판결을 쏟아낸,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인권도 자유도 없었던 시절. 문제는 친일파를 처벌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친미파로 재활용하면서 식민지 시대보다 더 큰 특권을 키워준. 친일파 처리를 외면한 한민당, 이승만 세력은 정상적 정치세력이라 할 수 없는 ‘극우파’란 이름도 과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손기정(孫基禎, 1912-2002)의 ‘일장기 말소 사건’은 김성수, 송진우 등 신문사 지도자들의 민족정신의 발로가 아닌 이길용, 이상범 두 기자의 용기. 미군정은 해방된 조선을 ‘민주국가’로 만들 의도ㆍ의지도 없이 식민지시대의 질서를 최대한 회복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 과거의 협력자 집단에게 맡길 수 있는 모든 권력을 맡기는 것이 그들에게는 제일 편리한 일.

역사학자는 우리의 해방정국과 비교할 수 있는 세계사의 흐름을 짧게 정리했다. 티토(Josip Broz Tito, 1892-1980)가 유고슬라비아 연방 체제를 만든 것은 발칸 지역 전체를 공산주의 연방으로 만들기 위한 출발점. 그리스에서 스탈린의 외면은 1년 동안 공산주의자등 1천여 명이 백색테러에 목숨을 잃었고, 그리스인민해방군 등 약 4만 명이 투옥. 공산주의자들이 민족통일전선을 제창하는 단계에서 신뢰를 얻기 힘들었던 이유는 스탈린(코민테른)의 일국사회주의 원칙 때문. 일본 항복후 미국은 국민당 정부에 엄청난 군사원조를 쏟아 부었으나 토호세력과 손잡은 국민당 정부를 외면한 일반 주민들은 공산당을 절대 지지.

김기협의 방대한 『해방일기』가 일기라는 형식을 빌려 해방정국을 되살려 낸 것은 부친의 영향이 컸다. 역사학자 김성칠(1913-1951)의 『역사 앞에서』는 6ㆍ25전쟁을 일기 형식으로 생생하게 기록했다. 역사학자는 말했다. “아버지가 전쟁이란 상황에 맞닥뜨려서 역사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힘껏 모색하셨듯이 저 역시 통상적인 서술방법으로는 한계를 느끼는 주제 앞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으로 ‘해방일기’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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