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레바논 감정
지은이 : 최정례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군립도서관의 비치된 시집을 검색하다 낯익은 표제를 만났다. 최정례(崔正禮, 1955-2021)의 『레바논 감정』이었다. 신형철(1976- )의 첫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에서 다루었다. 문학평론가는 2006년 여름의 한국시를 논하면서 시집을 ‘어떤 틀로부터 벗어나려는 서정시’라고 했다. 1년6개월 전에 잡은 책 속의 구절이 뇌리에 남아있었다.
시인은 1990년 『현대시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일곱 권의 시집을 냈고, 지병으로 타계했다. 2006년에 나온 시집은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었다. 「온몸을 잊으려고」(120-121쪽)의 2연이다. 차바퀴 밑에는 고양이가 / 늑골 아래에는 암세포가 / 야옹거리며 야옹거리며 사네
‘레바논 감정’은 감정의 흐름으로 어떤 대상을 꺼냈을 때 자신의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자료를 찾다가 알게 되었다. 2014년 〈레바논 감정〉은 영화감독 정영헌의 작품이었다. 영화감독은 시의 목적과 영화의 목적이 같은 지점에 있다는 생각으로 시집의 제목을 모티프로 삼았다. 영화는 상처 입은 사람들끼리의 연민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담았다고 한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53편이 실렸다. 문학평론가 최현식은 해설 「시간의 주름과 존재의 착색」에서 “그는 내 안의 부재한 타자들을 껴안거나, 그들에게 나를 개방함으로써 서로의 ‘결핍’과 ‘얼룩’을 치유함과 동시에 의미 있는 세계로 사뿐히 내려앉기를 소망”(124쪽)한다고 했다. 뒤표지 글은 『악장가사』와 『시용향악보』에 전해오는 작자미상의 고려속요 「정석가鄭石歌」의 ‘구운 밤 닷 되가 모래밭에서 싹이 돋아 자랄 때까지’(제2연)와 ‘무쇠로 황소를 만들어 쇠붙이나무鐵樹가 우거진 산에 방목하여 쇠붙이 풀鐵草을 다 먹을 때까지’(제5연)를 빌려와 시인의 시론詩論을 펼쳤다.
가로 처진 철조망 사이로 냇물이 흘러간다. / 지푸라기, 나뭇잎, 허섭스레기 철조망에 걸쳐놓고 / 내 말도 그렇게 흘러갈 수 있을까. / 그렇게 흘러서 벌판을 건널 수 있을까. |시인의 말|의 1연이다. 마지막은 시집을 여는 첫 시 「냇물에 철조망」(9쪽)의 전문이다.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이를 향하여 흐르는 강물이다 // 어제는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 오늘은 아닌 것 같다 // 조금 바람이 불었는데 / 한 가지에 나뭇잎, 잎이 / 서로 다른 곳을 보며 다른 춤을 추고 있다 // 저 너머 하늘에 / 재난 속에서 허덕이다가 조용히 정신을 차린 것 같은 모습으로 / 구름도 흘러가고 있다 // 공중에서 무슨 형이상학적 추수를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