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촘스키, 우리가 모르는 미국 그리고 세계

대빈창 2008. 8. 6. 10:55

 

 

책이름 : 촘스키, 우리가 모르는 미국 그리고 세계

지은이 : 노엄 촘스키

옮긴이 : 강주헌

펴낸곳 : 시대의 창

 

위 책 이미지는 내게 낯익다. 성조기가 불에 휩싸여 녹아 흘러내린다. 나는 생각한다. 표지 디자이너는 광주항쟁세대일 것이라고.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80년대 초 전남대 총학은 성조기를 본관 현관에 깔아 학생들이 짓밟으며 등교했고, 강원대는 성조기 소각사건으로 유명했다. 그렇다. 군사정권 하에서 제도교육은 극단적으로 말해 숭미주의의 일방적인 세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주항쟁은 그 껍데기를 한 겹 벗겨 버렸다. 부산항에 입항한 미항공모함 소식에 순진한 광주 시민들은 구군부에게 배운(?)대로 미국이 불법적인 신군부 쿠데타 세력을 일소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조국을 지키라는 군대가 부모와 형제를 학살하는 현장을 미국은 뒷배를 봐 주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체하는 교양(?)없는 자들이 바로 '반미'를 '빨갱이'로 매도하는 얼빠진 자들이다. 하긴 그들은 조중동을 열독한다. 80년 민주화의 봄과 광주항쟁시 그 신문들을 한번 들여다보라. 그런데 뭐! 이 사회의 소금과 빛이 되겠다고. 한술 더 떠 그들의 일제강점기 행태를 찾아보라. 그런데 그들은 스스로 떠든다. 스스로 민족신문이라고. 요즘 독도 문제로 온 사회가 벌통을 쑤셔 놓은 듯 하다. 그 일말의 본질은 이렇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정통성 없는 구군부는 개발독재 자금으로 한일협정을 맺으면서 '독도밀약'을 맺어 현재의 독도분쟁 빌미를 제공했다. 신군부는 그 밀약이 들통나면 곤란하다고 문서를 태워 버렸다. 진실이 조금 드러난 것이다. 나의 요즘 생각은 이렇다. 그렇게 독도를 사랑하는 만큼 애국심이 깊다면, 그 애국심의 1/10 이라도 정신대 할머니나 재일동포 지문날인 문제에 대해 광분 좀 하라고. 현실인식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으면서 연일 '애국'과 '민족'을 외치는 그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속내는 이렇다. 이 땅의 민중이 1년에 1만5천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까딱도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지만, 그들은 연일 왜곡과 기만을 밥 먹듯이 한다. 내가 보기에 이 땅에는 '보수'가 없다. 그들이 보수라고 자위해도 그것은 수구꼴통인 반동 세력이다. 진정한 보수란 오늘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민중이 처한 현실에 가슴을 드러내야 한다. 그렇기에 보수라고 우기는 자들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지 못하고 조중동 지면에 코를 박고 고작 '빨갱이'나 읊조리고 있는 것이다. 어째 글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불타는 성조기를 보자, 화염병을 손에 움켜쥐고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그 시절로 돌아간 듯 하다. 할 말은 많다. 일제강점기 36년이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앞당긴 시기였다고 헛소리하는 뉴라이트, 뭐주고 뭐 맞는(?) 소위 실용노선에 대하여, 초등학생부터 극심한 경쟁을 시켜야 한다는 자가 강남의 사회귀족들이 총궐기하고, 민중은 무관심한 결과로 최초 민선 서울교육감에 당선된 선거에 대하여. 그만 흥분하고 노엄 촘스키로 돌아와야 겠다.  '87년 한 강의실에서 언어학 수업이 있었다. 소쉬르의 '랑그와 빠롤',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아니 민주공화국이라는 나라가 대통령도 제 손으로 뽑지  못하고, 하수인 몇이 장충체육관에서 거수로 만장일치한 군홧발 정권이 파시즘을 연장시키려고 혈안이 된 지금, 저 따위 강의가 무슨 소용인가. 그 시간 서울대 언어학도인 박종철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파렴치한 정권은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언어도단으로 국민을 우롱했다. - 더 웃기는 것은 머리가 빛나는  그 자가 요즘  이 땅의 어려운 경제 현실을 타개할 묘안으로 국민에게 '하루 두 끼만 먹자'고 제안했다. 지나가던 개가 웃고, 풀을 뜯던 소가 하품을 할 지경이다. 하긴 그 자의 고향에서는 그 자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을 조성했다니, 더 이상 할말이 없다. 이건 차라리 무뇌아들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인생이 창창한 한 대학생을 물고문으로 죽인 인간백정 정권은 그 죽음이 도화선이 된 6월항쟁으로 막을 내렸다. 나는 20년 전 언어학자 촘스키를 지금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바람직한 모습으로 재회하고 있다. 촘스키의 글은 국가권력과 우익 언론으로부터 기만당해 왜곡되었던, 이 땅을 바로 보는 시각을 새롭게 하는데 중요하다. 특히 극우언론으로부터 '반미=빨갱이'라는 중독성 강한 마약 주사를 강제로 맞아야만 하는 이 땅의 민중들에게 더욱 중요한 해독제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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