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봉섭이 가라사대
지은이 : 손홍규
펴낸곳 : 창비
천운영, 백가흠, 편혜영, 김중혁, 김애란, 박민규, 박형서, 이기호, 권여선, 천명관, 김언수, 김도연, 김도언, 이명랑, 김숨``````. 앞뒤 가릴 것 없이 2 ~ 3년 내에 내가 잡았던 - 문학수상작 작품집에 실렸거나, 단행본으로 출간된 모음집을 잡았거나 - 소설들의 작가들이다. 문단에서는 흔히 '새로운 세기의 작가'라고 뭉뚱그려 부르지만, 등단년도가 대부분 90년대 후반이나, 이천년대 초반으로 평균적으로 소설모음집 2권, 장편소설 1권을 펴낸 신진들이다. '봉섭이 가라사대'는 표제도 특이하지만, 작가도 생경하다. 나름대로 요즘 소설 경향에 있어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그런대로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손홍규'는 전혀 낯설다. 책 날개를 펼치니, 2001년 등단한 이래, 소설집 '사람의 신화'와 장편소설 '귀신의 시대'를 펴냈다.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조금은 뇌세포에 균열이 가는 독서에 싫증이 슬슬 나기 시작해 머리도 식힐 겸 신간 소설 정보를 뒤적이다 눈에 뜨인 책이다. 웬만하면 지나칠 법한 나의 눈길은 '공동체적인 삶이 파괴된 채 약육강식의 원칙만이 존재하는 폭력적 현실에 적응하지 못했으나 내면 깊이 변혁의지를 품은 인간 군상을 희화화하고 풍자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라는 평에 사로 잡혔다. 그것은 요즘 소설이 현실이라는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허공에서 부유하는 듯한 가볍다는 느낌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책 이미지가 특이하다. 턱이 없는 큰바위 얼굴이 더군다나 머리에 뿔까지 달렸다. 말풍선 안의 그림은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무늬를 연상시키고, 소대가리와 초가집 그리고 이름모를 나무 한 그루. 혹시 요즘 사회적 이슈인 '미친소'와 연관된 이미지가 아닐까. 그렇다면 미친소를 먹어 광우병에 걸린 사람을 풍자적으로 형상화한 것일까. 하지만 표제작을 읽고나니 나의 상상력은 핀트가 전혀 맞지 않았다. 주인공 봉섭의 아버지 응삼의 모습이다. 평생을 소장수와 소싸움꾼으로 보낸 나머지 얼굴마저 소를 닮은 주인공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얼굴이다. 이 책에는 표제작까지 10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약육강식의 천민자본주의에서 무기력하기만한 인물들이 '반인간·비인간'적인 판타지로 그려졌다.
우리 시대의 젊은 작가들이 '기억, 경험'의 부재를 토로하면서 그 한계를 노출시키고 있다는 것이 진보적 문인들의 문학판에 대한 진단이다. 이러한 한계를 피하기 위해 '암울한 현실의 표면을 미끄러지듯 탈주하는 요즘 문학세계의 상상력, 익살, 해학은 오히려 '독박'을 쓸 수 있다고 어느 문학평론가는 경고했다. 그런데 작가 손홍규는 '상상력'으로 타자의 고통에 닿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손홍규의 소설을 처음 접했지만,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그의 문학적 진실성은 우리 문학의 '독박'에 브레이크를 걸 '쇼당'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믿는다. 허공이 아닌 현실에 발을 딛어야만 브레이크를 밟을 수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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