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박남준 산방일기
지은이 : 박남준
펴낸곳 : 조화로운 삶
속표지가 은은히 내비치는 한지의 반투명성. 목판화에 새긴 듯한 표제의 글씨체. 수묵화의 농담처럼 한지에 번져나가는 파란 색감은 조금 물때의 바다색이다. 홍매화 세 송이가 허공에 흩날린다. 본격적인 책읽기게 앞서 나는 겉표지 한지를 한겹 벗겨낸다. 세 송이 꽃을 매단 여린 매화가지가 드리웠고, 분분히 날리는 매화 꽃송이들은 저자인듯한 인물이 감상하는 표지 그림이다. 그러고보니 부제가 '시인 박남준이 악양 동매마을에서 띄우는 꽃편지'다. 동쪽 매화마을에 시인은 살고있다. 출판사의 정성이 깃든 고풍스런 제본은 책을 잡는 독자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하잘것없는 허위의식에 기댄 값비싼 양장본은 불편하다.
책씻이하고 난 손때 묻은 책을 한지 겉표지로 다시 감싸 책장 한 켠에 자리 잡아준다. 펴낸곳의 세밀한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나는 시인의 시집을 아직 잡지 못했다. 근작시집인 '적막'을 손에 넣으려고 마음 먹었으나, 손길은 '산방일기'로 향했다. 그것은 이 책이 저자의 두번째 산방일기면서도 '적막'의 시들의 탄생배경을 알 수있는 시작노트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집한칸, 손바닥만한 땅 한조각도 갖지 않겠다는 생각을 천명처럼 여겼다. 하지만 지인들이 멀리 섬진강이 보이는 지리산자락 하동의 악양에 집 한 채를 마련해 주어 이사를 한다. 지난해 구월 초순이라고 하니, 책은 작년에 출간되었고, 재작년 그동안 삶을 꾸려왔던 전주 모악산의 산방을 떠나 이 곳에 터를 잡은 것이다. 또다른 산방일기인 '꽃이 진다 꽃이 핀다'는 전주 모악산 생활을 그린 산문집으로 2002년에 출간되었다. 나는 시인의 저작 중 두 편의 산방일기만 잡았다. 모악산 산방은 무당이 쓰다 버리고 떠난 폐가로 음습한 계곡에 자리잡아 여름에는 곰팡이 내로 퀴퀴하고 겨울에는 햇빛이 노루꼬리만 했다. 이에 시인을 안타깝게 생각한 이들이 악양(햋빛드는 산)에 강제(?)로 이사를 시킨 것이다.
서두에서 밝힌 표지 그림의 매화 이미지는 아마! 시인이 살고있는 마을 이름에서 연상하였을 것이다. 시인의 산골 촌집에 한문 공부를 하는 한 지인이 당호를 지어준다. 심원재(心遠齋)로 '마음을 멀리 보는 집'이라는 뜻으로 전원시인 도연명의 '음주'라는 시편에서 글귀를 따왔다. 시인은 돈을 쓰지 않는 삶을 선택하면,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전주 모악산으로 들어갔다. 스스로 '관값'이라 부르는 200만원만 지니고, 여기서 돈이 넘치면 시민단체에 기부한다. 시인은 머리만 안 깍았을 뿐이지, 속세를 청정도량 삼아 수행하는 유마거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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