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나는 왜 불온한가
지은이 : 김규항
펴낸곳 : 돌베개
표지 도안에 대한 설명이 앞날개에 적혀 있는것이 요즘 출간되는 책들의 하나의 경향인데, 이 책은 글쓴이의 짧은 이력만 보인다. 책읽기를 마치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찢어진 차광막처럼 보였다. 그 찢긴 공백에 표제와 저자명이 자음과 모음이 어긋난 채 박혀있다. 표지 디자인에 무슨 의미를 부여한 것 같은데 아리송하다. 나의 느낌대로 찢어진 차광막이라면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 사회 체제가 지탱되는 구조나 원리를 보지 못하게 눈 가리는 도구인 대중매체가 부지런히 쏘아대는 공중파거나, 자본주의가 권하는 소비라는 달콤한 당근의 그물을 지은이의 직선적인 통찰력이 찢어내는 것처럼 내게는 보인다. 제법 많은 독자가 찾는 저자이지만, 저서는 고작 두 권이다. 지은이는 스스로 자신을 B급좌파라 부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을 하는 사람으로 활동가를 주저없이 손꼽는 저자는 그렇지못한 자신의 처지를 나타낸 자괴감의 표현이라 생각된다.
지은이의 글은 정곡을 바로 찔러 들어간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한국이라는 포수 미트를 향해 변화구 하나 섞지 않고 초지일관 강속구만 뿌려대는 스타일이다. 이 책에서 나의 관심이 가장 크게 집중된 부분은 반동적 사회의식의 결정적 도구인 '한국교회'에 대한 지은이의 견해다. 저자는 '예수 이야기' 시리즈를 비롯한 몇 편의 칼럼에서 예수의 삶을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나의 글을 읽는 교회를 다니는 신도들을 위해 노파심에서 한마디 거둘 수밖에 없다. 저자는 바로 한국신학대학교 출신이다 '독사의 새끼들'은 한국 교회가 제시하는 신은 저에게 극진한 자식만 챙기는 이기적인 신으로, 형제의 고통을 외면하고 제 안락만 좇아 성공한 사람을 신의 축복이라 여기는 세계교회 역사상 가장 탐욕적인 교회라고 일갈한다. '예수의 얼굴'에서는 교회의 저열한 판촉에 얼이 빠진 '돈'교의 지회에 불과하다고 강속구를 던진다. 하긴 천민자본주의에서 대부분의 교회는 '돈을 벌어들이는 상점'이거나, 예수의 실천과는 전혀, 아니 반대방향으로 돌진하는 '돈'교회로 타락했다.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내가 경험한 교회 신도들과의 아름다운 추억 한 토막을 소개한다. 17년 전 한겨울 나는 명동성당의 철야 농성장에 있었다. 근 일주일 진행된 철야농성에서 잠자리는 성당 입구 계단에 두꺼운 스티로폼을 깔고, 투명 비닐을 이불 삼아 해결했다. 그 살벌한 상황 한가운데서 나는 끼니 걱정을 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때 성당 건너편 길을 마주보고 있는 교회에서 대여섯 명의 아주머니들이 대열을 이루어 고무함박을 머리에 인 채 성당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교회 첨탑에는 이런 현수막들이 찬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홍근수 목사를 석방하라.' 즉 목사님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었던 것이다. 그 함박에는 불온(?)한 사상이 머릿속을 꽉채운 우리 농성자들의 끼니가 담겨 있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야외 수돗가 찬물로 설거지를 하여 빈 그릇을 함박에 담아 교회에 되돌려주었다. 교회 신도들이 성당의 농성꾼들에게 따뜻한 밥과 직접 담근 찬을 봉사하던 그 겨울의 정경을 떠 올리는 나의 가슴이 싸해져 온다. 자본의 논리가 인간적 가치를 압살한 현재, 그 추억은 더욱 소중하다. 아니, 그 소중한 인간적 가치를 다시 복원하기 위해서라도 지은이의 다짐처럼 우리는 더욱 불온(?)해져야 하지 않을까. 지은이의 말을 빌리자면 '진리는 쉽다.' 상식과 인간적인 가치가 통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또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얼개쯤을 꿰려면 이 땅에서는 불온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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