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옛집의 향기, 나무
지은이 : 고규홍
펴낸곳 : 들녘
은행나무 - 대구 도동서원, 경남 합천 호연정, 충남 논산 이삼장군 고택, 충남 아산 맹사성 고택, 전남 화순 학포당, 소나무 - 전남 담양 소쇄원, 충남 예산 추사고택(백송), 충북 괴산 암서재, 향나무 - 충남 서산 송곡서원, 충남 당진 필경사, 회화나무 - 경북 예천 삼강리 주막, 충남 서산 해미읍성(호야나무), 푸조나무 - 전남 나주 쌍계정, 왕버들 - 경북 봉화 청암정, 굴참나무 - 전남 담양 면앙정, 벚나무 - 전남 화순 물염정, 탱자나무 - 전북 익산 이병기 생가, 뽕나무 - 강원 정선 고학규 가옥, 무궁화 - 경북 안동 예안향교, 배롱나무 - 충남 논산 윤증고택, 느티나무 - 경북 봉화 도암정, 감나무 - 경남 합천 소학당, 경북 봉화 청량정사의 고사목.
이 책에 등장하는 몇백년 삶의 고택에 둥치를 튼 23그루의 노거수다. 글 쓰고 사진도 찍은 저자 고규홍은 자칭 '나무 칼럼니스트'다. 맞는 소리다. 산림학자 전영우가 나무와 숲에 대한 해박한 전문지식을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 많은 독자의 호응을 얻는 반면 고규홍은 우리나라에서 노거수에 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소유한 전문가로 자타가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저자는 '이 땅의 큰나무(눌와)', '절집나무(동녘)'을 내면서 사진작가 김성철의 도움을 받고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했으나, '옛집의 향기, 나무'는 고택과 함게 생을 꾸려 온 나무를 소개하는 기행문 형식을 취한 점이 다르다. 지은이가 23그루의 나이 든 나무들을 찾아 무작정 길을 떠나 만난 옛집들이 무려 210여 군데로 그중 서원, 원림, 정자, 생가, 고택, 향교, 서당, 성곽 등 사람살이의 특별한 곳 23곳을 선정했다. 저자의 나무에 대한 열정은 유일무이하게 개인의 신청으로 문화유산을 발견했다. 그 나무는 경기 화성 서신면의 물푸레나무로 2006년 천연기념물 제470호로 지정되었다.
옛집에 살면서 노거수(老巨樹)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향기가 오래 남은 나무들을 접하면서, 나의 뇌리에 각인된 은행나무 한 그루와 일주일에 한번은 마주치는 서도의 천연기념물 그리고 어린시절 추억이 깃든 향나무를 소개한다. 나에게 제일 인상깊은 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75호 일명 '용계 할배나무'다. 아직 실물로는 접하지 못했으나, 이런저런 정보를 통해 이제 할배나무가 제 자리를 잡아 무성한 가지와 잎을 자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은행나무는 원래 용계초등학교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수장 위기에 처했다. 수령은 700여년이며 크기는 37m, 가슴높이의 둘레가 14.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굵은 줄기를 자랑하는 노거수다. 나는 아직도 의문이다. 무지막지한 그 시절에 어찌 이런 일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 아마! 전두환 정권의 유일한 치적(?)일지도 모르겠다. 600톤 무게의 할배나무를 베어서 목재로 팔면 단돈 천만원이었다. 그런데 3년 공사를 벌여 15m 높이의 인공산을 조성하여 상식(上植) 공사로 우리의 '할배나무'를 살린 것이다. 공사비용은 무려 20억원이었다. 어떻게보면 거짓말같은 사실이다. 광주학살의 원흉이 생명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승만이 방귀를 뀌자, 옆에 있던 부하가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아부를 떨자, 요직에 앉혔다는 있을법하지 않은 에피소드가 왜 이럴때 나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일까.
내가 일주일에 한번 마주치는 은행나무는 바로 천연기념물 제304호로 볼음도 저수지를 지켜주고 있다. 너무 자주 접하는지라 그 소중함을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21그루중 한 나무다. 나무 높이는 24.5m이고, 가슴 높이의 둘레는 8m로, 800여년 전 큰물에 떠내려 온것을 심었다고 전해진다. 마을 주민에 따르면 십여 년 전가지만 해도 은행나무는 비루먹은 강아지 몰골이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나무가 활개를 칠수 있는 이유는 저수지 축조 때문이라고 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은행나무의 위치가 바닷가에 너무 바투 있다. 소금기 밴 바람에 늘 시달리다 보니 나무의 성장에 지장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저수지에 가둔 담수가 오늘의 우람하고 장대한 은행나무를 키운 일등공신이었다. 어느날 마을 이장은 나에게 우스개 소리를 했다. '이 나무가 왜 수나무인지를?' 그러면서 가리킨 곳을 보니, 정말 남자의 거시기처럼 생긴 나무 돌기가 가지가 갈라지는 지점에 늘어져있었다. 그것은 유주(乳柱)였다. 은행나무에서만 볼수 있는 가지에서 땅 쪽으로 마치 종유석처럼 자라나는 돌기로 공기 중에 숨쉬는 기근(氣根)의 일종이다.
윤증 고택에는 다행스럽게 지금도 후손들이 종가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 종가댁의 장맛이 유명한데, 이유는 우물물의 근원까지 뿌리내린 향나무 덕분이라고 한다. 그렇다. 물맛이 좋으면 장맛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국민학교 시절의 서글펐던 기억이 떠오른다. 학교를 파하면 나를 매일 기다리는 노동이 있었다. 물지게를 지고 마을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것이 어린 나의 몫이었다. 고향의 어린시절 향수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향나무 때문이었는지 지금도 마을 공동우물의 물맛은 기가 막혔다고 기억된다. 우물가에는 아름드리 향나무 3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지금 고향의 우물은 폐쇄되었고, 향나무가 남긴 그루터기도 이젠 다 썩어 문드러졌다. 이유는 그 잘난 마을안 도로포장 공사였다. 슬프다! 고샅을 시멘트화하면서 걸리적거린다고 마을과 희노애락을 함께 한 아름드리 마을 공동 재산을 베어버리는 우리 시대의 가난한 문화적 감수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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